
근대 한복 재단의 옷감 소요량 산출과 도면 작업 연구 : 1925~1961년 간행된 재봉교습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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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transition towards a scientifically systematized method of Hanbok cutting through early modern dressmaking coursebooks. Published between 1925 and 1961, these dressmaking coursebooks introduced cloth requirement calculation tables, cutting diagrams, fabric calculation formulas, and Western-style pattern drafting techniques, significantly enhancing the precision of Hanbok cutting. In particular, cutting diagrams and fabric calculation formulas allowed for accurate calculation of fabric requirements, incorporating developments such as lined garments and seam allowances. Systematization of early modern Hanbok cutting has impacted contemporary Hanbok production in three major ways. First, it enables efficient and accurate calculation of fabric requirements. Second, it ensures consistency and quality through standardized drafting techniques. Third, it facilitates customized Hanbok production to fit diverse body types through practical pattern use. This study sheds light on how the evolution of early modern Hanbok sewing theory contributes to the establishment of framework for contemporary Hanbok production.
Keywords:
Clothing life, Hanbok cutting, Cloth requirement calculation, Cutting diagram, Western-style pattern drafting키워드:
의생활, 한복 재단, 옷감 소요량, 마름 도식, 제도Ⅰ. 서론
근대에 이르러 한복재봉 방식은 설명과 시연을 통한 구술적 전승에서 문자와 도판을 활용한 기록물 중심의 전달 방식으로 변화하며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김윤희, 2024). 근대 간행된 재봉교습서는 전통 한복 제작 방식을 기록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25년부터 1961년 사이에 간행된 초기 재봉교습서는 저자들의 연구 지향과 경험을 반영하여 한복 제작의 기초 이론을 정립하였고, 각기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특히 ‘마름’이라고도 불리는 재단 과정에서 옷감 소요량 산출, 마름도식, 산출공식, 제도를 도입하여 한복 재단법과 도면 작업에 있어 전환을 이끌었다. 이러한 사항은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으며, 연구 축적에 따라 간행 시기별로 변화된 양상을 보인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는 전통 방식에 기반한 의복별 옷감 소요량 산출표를 제공하였다. 또한 한복의 각 부위별 옷감 배치 방식을 시각화한 마름도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산출공식을 통해 효율적인 재단과 옷감 절약을 도모하였다.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은 근대 초기부터 점차 정교해지면서 과학적 방식으로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인 1948년에 간행된 『조선재봉』과 『재봉교본』은 옷감 산출표, 마름도식, 산출공식을 제시하여 재단 이론의 기초를 확립하고, 근대 한복 제작 방식의 체계화를 이루었다. 1959년에 간행된 『우리나라 옷』은 한복 제작에 양재식(洋裁式) 제도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한복 제도의 표준화와 정례화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를 통해 한복 재단 방식이 발전하고, 전통적 방식에서 수치화된 과학적 접근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근대 재봉교습서 분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개별 저서의 재단법을 검토한 선행연구가 있다(이경미, 2024a). 또한 근현대 재봉교습서를 주요 자료로 설정하여 여자 저고리의 깃 재단, 치마 폭 잇기에서의 사선깎기 등 특정 의복 부분별 요소의 재단 방식을 심도있게 검토하여 시 기별 변화상의 비교한 연구도 진행되었다(김명이, 2016; 이경미, 2024b; 이정상, 2002). 이상의 연구들은 개별 저서와 특정 복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를 통해 한복 재단 방식이 체계화되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 나타난 한복 재단법의 변천을 옷감 소요량 산출과 도면 작업 중심으로 분석하여, 근대적 체계로 발전한 한복재봉 이론의 정립 과정을 탐구하고자 한다. 전근대의 어림 방식과 근대의 마름도식, 산출공식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한복 재단의 구조적 변화와 그 의의를 규명하고, 나아가 근대 한복재봉 이론이 오늘날 한복 제작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둔다.
Ⅱ. 연구 방법
1. 연구 대상 문헌
본 연구는 근대 한복 재단의 옷감 소요량 산출과 도면 작업 방식을 고찰하고 발전 양상을 검토하기 위해 1925년부터 1961년에 간행된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표 1>. 근대 한복재봉 교육은 학교와 강습소를 통한 정기 수강, 강습회를 통한 단발적 수강, 책을 구입하여 개별적으로 습득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김윤희, 2024; 조희진, 2014). 따라서 도제식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상을 고려하여 근대 한복재봉 교육 목적으로 발간된 단행본을 ‘재봉교습서’로 명명하였다. 주요 분석 대상은 『조선재봉전서』(김숙당, 1925), 『조선재봉』(손정규, 1948), 『재봉교본』(이소담, 1948), 『우리나라 옷』(석주선, 1961) 4종이며, 초고와 수정 증보를 통해 저자의 이론이 정립되므로 『신편재봉참고서』 卷1(손정규, 1925), 『조선재봉참고서』(손정규, 1935), 『우리나라 옷』(석주선, 1959)를 함께 검토하였다. 연구대상으로 삼은 근대 초기재봉교습서는 한복재봉 이론의 발전과 저자의 개인적 관심사가 반영되어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조선재봉전서』는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된 최초의 재봉교습서이며, 『조선재봉』은 1925년부터 정립된 손정규의 한복재봉 이론이 한글로 번역되어 저본을 함께 검토하면 10년 단위의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재봉교본』은 저자의 발명품인 한복 저고리용 곡자[曲尺]를 활용한 재봉법과 개량복에 관한 제언을 담고 있으며, 『우리나라 옷』은 광복 이후 다년간 우리 옷 제도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한복재봉 이론이 정리되었다. 이들 문헌은 옷감 소요량 산출과 도면 작업을 수록하고 있어, 한복 재단법이 근대적 체계로 정립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2. 자료 분석 방법
본 연구는 근대 한복 재단의 주요한 영역인 옷감 소요량 산출과 도면 작업을 분석하기 위해 문헌의 내용을 검토하여 재단과 봉제를 숙지하고 도면과 산출식을 비교하며 재봉교습서의 간행 시기별 변화 양상을 도출하였다. 또한 전근대의 옷감 산출법과 도면 작업은 전근대 재봉 관련 내용이 담긴 문헌인 『규합총서』를 검토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유물로 재단의 한방식인 옷본 제작이 어떻게 실시되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근대 방식에서 재단의 특징을 도출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재봉교습서 외에 정리된 당대 재봉 방식을 참고하였고, 동아일보·경향신문·조선일보 등 근대 신문을 통해 당시 시대적 인식을 제시하였으며, 현재의 재단 방법과 비교하기 위해 한국직업능력연구원(2023)에서 간행한 『한복 옷본 제작』을 활용하였다. 옷감 소요량 산출은 전근대와 근대 의복 제작에서 산출 방식을 비교하며, 재봉교습서에 수록된 옷감 산출표와 마름도식에 따른 산출공식을 통해 체계적인 방식으로 변화된 양상을 분석하였다. 도면 작업은 완성품의 시각적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과 설명을 중점에 둔 전통적인 ‘견양(見樣)’ 방식과 차이가 있으며, 제작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양재(洋裁)에서의 제도를 한복재봉에 적용한 방식과 양재식 제도의 확장을 단계별로 분석하였다.
Ⅲ. 연구 결과 및 논의
1. 한복 옷감 소요량 산출의 체계화 과정
조선시대 가정생활서인 『규합총서』 「봉임측」에는 관(冠)과 신[鞋]을 제작할 때 필요한 재료의 분량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혜(女鞋) 제작에는 “음 댱 칠촌, 광 오촌이면 아모 큰 신도 되고(빙허각 이씨, 1809)”라고 하여, 신을 만드는데 필요한 옷감의 최대 소요량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복을 일상적으로 착용하던 시대에 특정 복식에 대한 옷감 소요량은 경험에 기반한 일반적 지식으로 통용된 것으로 보인다. 1927년에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朝鮮人の思想と性格)』에는 모시 홑두루마기 1벌을 제작하는데 한척(韓尺)으로 22~23척이 필요하다는 재봉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朝鮮總督府, 1927). 모시 홑두루마기의 옷감 소요량에 관한 상식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1필로 홑두루마기 2벌을 제작할 수 있었으나, 조사가 이루어진 시점에는 1벌을 만들면 10척이 남는다고 하여, 모시 1필의 길이가 이전보다 짧아졌음을 증명하는 척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신문 기사에는 옷감 소요량과 비용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제공되었다. 검소한 생활을 권장하며 “치마 한 가음에 삼원 이상을 넘기지 맙시다(조선일보, 1929).”라고 하였고, 봄에 유행하는 옷감으로 라백사(羅伯紗)를 소개하며 “가격은 한 마에 이원 륙십전 가량이니 저고리 한 감에 약 오원 이십 전 가량 든답니다(조선일보, 1939).”라고 하여 해당 옷감으로 저고리를 지어 입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제시하였다. 특정 의복 제작에 필요한 옷감 소요량은 광복 이후 옷감 판매점의 광고에도 적용되어 일정 기간 사회적으로 통용된 인식으로 유지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이로 볼 때 한복 제작에 필요한 옷감 소요량은 의복의 종류와 양식에 따라 상식 수준에서 공유되었고, 착용자의 연령 및 성별을 감안하여 구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는 옷감 폭에 따라 넓은폭(90cm), 중간폭(75cm), 좁은폭(36cm)으로 구분하여, 연령별 옷감 소요량을 정리한 ‘옷감 산출표’를 제시하고 있다. 옷감 산출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5년에 간행된 손정규의 『신편재봉참고서』로, 미터법과 조선척을 함께 사용하여 옷감 소요량을 제시하였다. 후속작으로 간행된 『조선재봉참고서』와 『조선재봉』은 길이 단위 도량형의 기준 변화에 따라 미터법 단일 단위로 수정하였다. 연령별 착용자는 약 5세 단위로 구분되어 신체 발달 단계에 따라 의복의 크기와 소요량을 가늠하기 적절한 실용적인 형태로 보인다.
각각의 옷감 산출표는 옷감 폭에 따라 7~8가지 의복의 소요량을 명시하고 있다. 1948년에 발간된 『조선재봉』과 『재봉교본』의 옷감 산출표를 비교하면, 옷감 폭에 따라 산출 대상에 차이가 있다<표 2>. 『조선재봉』은 남자 옷으로 두루마기, 저고리, 바지, 마고자, 여자 옷으로 치마, 통치마, 저고리, 단속곳, 바지를 대상으로 한다. 반면 『재봉교본』은 남자 옷으로 두루마기, 저고리, 바지, 마고자, 여자 옷으로 두루마기, 치마, 저고리, 단속곳, 바지를 대상으로 하여, 여자 옷에 두루마기가 포함되고 통치마가 제외되었다. 대부분의 의복에 대해 옷감 폭에 따른 소요량을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특정 옷감 폭의 소요량만 산출된 경우도 있다. 『조선재봉』에서 통치마는 넓은폭, 마고자는 중간폭에서 다루며, 『재봉교본』에서 남자 마고자와 여자 두루마기는 90cm 폭, 여자 단속곳은 75cm 폭, 여자 마고자는 36cm 폭에 수록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신편재봉참고서』, 『조선재봉』, 『재봉교본』의 옷감 산출표에 제시된 옷감 종류는 차이가 있으나, 옷감 너비 항목 별로는 일정한 공통성을 갖고 있다. 90cm 너비의 넓은폭 옷감은 캘리코(キヤラコ, calico), 광목(廣木), 옥당목(玉唐木), 옥양목 등 수입된 넓은 폭의 면직물이다. 75cm 너비의 중간폭 옷감은 모본단(毛本緞), 목모본단(木毛本緞), 라사(羅紗), 접영(接英), 순인(純仁), 생고사(生古紗), 법단, 양단, 자미사 등으로 견직물과 모직물이다. 36cm 너비의 좁은폭 옷감은 무명[木綿], 모시[苧], 명주(明紬)로 전근대부터 가정에서 직조하였던 우리나라 전통 평직물에 속한다.
한편 『조선재봉』과 『재봉교본』에서 재봉 방법을 다룬 본문 내용과 옷감 산출표에 수록된 의복이 상충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여성용 두루마기와 마고자는 산출표에만 나타나고, 본문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조선재봉』은 여자 옷을 종류별로 설명하며 마고자와 두루마기를 ‘방한용(防寒用)’으로 분류하고, “女子는 儀式때에 마고자나 주의는 입지 않습니다(손정규, 1948).”는 설명을 보충하여 겨울철 일상복으로서 기능과 전통 의례용 복장의 차이를 구분하였다. 초창기 재봉교습서 중 여자 두루마기와 마고자 재봉 방법을 처음 다룬 것은 1959년 간행된 『우리나라 옷』이다. 『우리나라 옷』에서 각각의 의복에 대해 마고자는 “근래에 와서는 도심지의 젊은이들도 많이들 입는다(석주선, 1959).”, 두루마기는 “지금 웃옷하면 반드시 두루마기를 입을 줄 안다(석주선, 1959).”고 하여 불과 10년 사이에 변화된 여성 웃옷에 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는 시기별로 변화하는 의생활상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주요 연구 대상과 연구 결과물이 담겨 있어 각각의 재봉교습서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재봉교본』은 이소담의 학력과 경력, 재봉교습서의 구성과 내용으로 볼 때 간행 시기상 앞선 손정규의 저작물을 참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옷감 산출표에서는 『조선재봉』에 공통 수록된 남자 주의·바지, 여자 저고리·치마의 소요량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다음의 <표 3>은 『조선재봉』과 『재봉교본』의 옷감 산출표를 비교한 것으로, 수치 변화를 검은 삼각형(▲, ▼)으로, 기록상 오류는 원형(○)으로 표시하여 그 차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었다.
옷감 산출표에서 수치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은 남자 바지, 여자 저고리·치마와 같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상의와 하의이다. 5세용 남자 바지는 옷감 폭에 따라 소요량에 차이가 있으며, 75cm 폭에서는 모든 연령 구분에서 옷감 소요량이 줄어들었다. 여자 저고리는 75cm 폭과 36cm 폭에서 총량이 모두 줄어들었다. 특히 75cm 폭 성인용 저고리 소요량은 168cm로 기록되어 5cm 단위보다 정밀한 치수를 제시하는 점이 주목된다. 『재봉교본』은 한복 저고리용 곡자[曲尺, 재단형A]를 개발한 이소담의 저작물이므로(조선일보, 1936), 여성 저고리 옷감 총량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계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 치마는 15세와 성인에 한정하여 옷감 소요량이 증가 또는 감소하였다. 『조선재봉』은 90cm 폭에서 치마의 종류를 자락치마와 통치마로 구분하였는데, 『재봉교본』의 치마는 『조선재봉』의 통치마 옷감 소요량과 동일하므로 『조선재봉』의 치마는 통치마로 추정된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서는 의복별 옷감 소요량을 제시한 산출표 외에도 도식과 수치를 통해 재봉에 필요한 옷감의 총량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역이 옷감 재단인 ‘마름’이며, 『조선재봉전서』와 『재봉교본』은 “마르는 법”, 『조선재봉』은 “마름질”, 『우리나라 옷』은 “어림”과 “재단”이라는 항목으로 명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의복 제작은 옷감 조각을 부분별로 잘라내어 바느질로 이어 붙여 완성하는 방식이다. 옷감을 자를 때는 길이가 길고 폭이 넓은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덜어내어 자투리를 활용하고 효율성을 높였다. 한복 제작에 필요한 옷감 소요량은 이미 일정한 기준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름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여겨졌다. 특히 마름하고 남은 여분은 다른 의복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조각을 남기는 것은 개인의 역량과도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는 의복 구성 요소를 덜어내는 방법을 그려 넣은 ‘마름도식’, 옷감 소요량을 계산하는 ‘산출공식’이 각각 활용되었다<표 4>. 『조선재봉전서』는 마름도식을 포함하였으나, 산출공식은 여성 상복인 며느리 제복과 딸 제복 2건에만 적용되었다(김숙당, 1925; 김윤희, 2024). 『조선재봉』, 『재봉교본』, 『우리나라 옷』은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재봉교습서에서 마름도식은 의복 제작의 하위항목에 속하므로 도식 캡션에는 의복 명칭을 생략한 경우도 있다. 옷감 폭과 옷감 명칭은 병기하거나, ‘옥양목폭’, ‘법단폭’, ‘모시폭’과 같이 옷감 폭을 유추할 수 있는 옷감 이름 또는 옷감 폭만 언급하기도 한다. 마름도식은 성인 남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조선재봉전서』에서는 13~14세 남자와 13~16세의 여자에 해당하는 미성년 일상복 마름도식도 13건이 있다.
『조선재봉전서』, 『조선재봉』, 『재봉교본』의 마름 영역은 90cm, 75cm, 36cm 너비의 옷감에 따라 마름도식을 종류별로 열거하였으며, 동일한 옷감 폭에서도 여러 형태의 마름 도식을 제시하였다. 옷감 폭은 마름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마름 방식은 옷감 소요량을 계측하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마름 방식에 따라 옷감 소요량에 차이가 있으므로 각각의 산출공식은 해당 마름도식 하단에 기록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옷』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옷감 폭의 마름도식을 제공하며, 마름도식이 2가지 이상 정리된 경우는 74cm 너비와 147cm 너비의 옷감을 사용하는 남자 두루마기가 유일하다(석주선, 1961).
마름에 앞서 숙지해야 하는 기본 원칙은 의복 부분별 구성 요소를 식서 방향에 맞춰 재단하는 것이다. 식서란 직물폭 양변에 올이 풀리지 않도록 조밀하게 짠 가장자리를 말하며, 직물의 길이가 곧 식서 방향이다. 식서 방향으로 마름하는 이유는 저고리 품, 치마 폭, 바지 통의 너비 변화를 최소화하고, 옷감을 구성하는 실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는 ‘마름은 식서 방향대로 한다’는 부연 설명은 없지만, 마름도식에서 직물 폭과 길이 방향을 바탕으로 부분별 구성 요소의 상하 위치와 골선 표시를 확인하여 식서 방향에 맞춰 재단한다는 원칙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는 식서 방향 기호가 생략되어 있어 독자가 활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일부 마름도식은 의복 구성 요소를 한 틀에 표시하지 않고,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설명하였기 때문에 마름도식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식서 방향이 통일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그림 1]. 현대 재봉교습서는 마름도식, 봉제 도판에 식서 방향을 상징하는 ‘↔’ 기호가 추가되어 재단 이론의 발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옷감 폭에서 마름도식의 다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의복으로는 바지통 사이에 ‘밑’이라고 불리는 사다리꼴 형태의 구성 요소를 가진 단속곳이 있다. 단속곳은 치마속에 입는 속옷의 한 종류로, 『조선재봉』에서는 “치마 밑에 입는 것(손정규, 1948)”, 『재봉교본』에서는 “치마 속에 입는 아랫도리 옷(이소담, 1948)”, 『우리나라 옷』에서는 “치마 밑에 입는 옷(석주선, 1961)”이라고 하였다. 전통적인 여자 하의 구성은 속속곳-속바지-단속곳-치마 순으로 이루어졌다. 속속곳은 속곳이라고도 하고, 『조선재봉전서』에는 단속곳과 형태상 유사함으로 인해 한 장(章)으로 묶여 재봉법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조선재봉』부터 『우리나라 옷』까지 속속곳 재봉법은 제외되었는데, 이는 1945년 전후 일반 부녀자의 속옷이 서양식으로 대체된 시대적 흐름과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박경자, 1983). 따라서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 단속곳이 공통으로 수록되었다는 것은 의생활의 변화 속에서도 1960년대 초까지 한복의 여성용 속옷으로서 중요하게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단속곳은 사다리꼴 형태의 ‘밑’ 외에도 밑이 뜯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덧대는 ‘밑바대’와 ‘가래바대’ 같은 사각 형태가 아닌 구성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배열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마름도식이 나타난다. 『조선재봉전서』, 『조선재봉』, 『재봉교본』은 36~40cm 너비의 모시, 삼팔, 명주를 소재로 한 단속곳 마름도식을 삽입하여 좁은폭 옷감의 마름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표 5>. 『우리나라 옷』은 중간폭인 76cm 옷감을 활용한 마름도식 1가지만 싣고 있으므로 비교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마름은 길이가 길고 너비가 넓은 것부터 옷감에서 덜어내기 때문에 마름도식에는 바지폭(대폭, 소폭), 밑, 허리말기, 끈, 밑바대, 가래바대 순서대로 표시되었다. 옷감의 온폭을 사용하지 않는 허리말기 이하면적이 작은 구성 요소는 길이와 너비에 맞춰 배열한다. 『조선재봉』과 『재봉교본』의 단속곳 마름도식 하단에는 산출공식이 있다. 단속곳 옷감 소요량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폭, 작은 폭(밑), 허리, 끈의 길이 정보가 필요하다. 좁은폭 옷감으로 단속곳을 제작할 때 옷감 소요량 계산식은 바지폭과 작은 폭(밑), 허리 말기와 끈 길이를 수량만큼 모두 더하는 ‘(바지폭 길이×a)+(바지 작은폭 길이×2)+허리말기길이+끈 길이’가 기본 산출공식이며, 수치를 대입하여 총길이인 옷감 소요량을 계산한다.
간혹 마름도식에 그려진 부분별 구성 요소와 산출공식에 포함된 구성 요소간에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표 5>의 『재봉교본』 마름도식에는 대폭이 7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속곳의 좌우 바지통 너비는 동일해야 하고, 산출공식에도 폭이 6개로 나타나기 때문에 도식의 오류이다. 또한 『재봉교본』 산출공식은 ‘폭×6+밑×2+끈+허리=총길이’라고 하여 끈과 허리를 별개로 계산했지만, 마름도식에서 끈과 허리는 같은 폭에 나열되었고, 가래바대와 밑바대가 별도의 영역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산출공식은 ‘폭×6+밑×2+허리+가래바대+밑바대=총길이’로 수정되어야 하며, 치수를 대입하면 ‘125×6+127.5×2+115+22×2+15=1179cm’로 계산된다. 이처럼 마름도식, 산출공식, 치수 대입 계산식에 오류가 나타나는 것은 재봉교습서 교정 과정의 실수로 생각된다. 재봉교습서를 활용하는 독자는 재봉법에 따라 실습하면서도, 의복의 구성 요소와 수치를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에 대조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이 밖에도 동일한 저서 내에서 특정 옷감 폭에 따라 여러가지 마름 방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재봉』은 35cm 너비의 모시, 한양사로 단속곳을 제작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을 제시하였다<표 6>. 좁은폭 옷감은 구성 요소 배치 방식에 따라 4가지 유형의 단속 곳 마름도식을 제공하며, 각 유형에 맞는 산출공식이 기록되어 있다.
<표 6>의 A는 <표 5>의 40cm 너비 마름도식과 유사한 형식으로, 일반적인 단속곳 마름 방식으로 보인다. <표 6>의 B는 의복 구성에서 바지폭의 종류를 대폭, 중폭, 소폭으로 구분하여, 중폭은 사다리꼴 형태로 4장 마름한 뒤 박음질하여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온폭인 대폭·소폭의 식서와 중폭의 어슷선을 박음질하여 바지통을 만드는 방식이다. 바지통의 폭 수가 4폭에서 3폭으로 변경되어 옷감 소요량이 감소했으나, 사다리꼴 형태의 중폭을 재단하는 까다로운 방식을 제안하였다. <표 6>의 C와 <표 6>의 D는 단속곳 구성 요소인 ‘밑’을 제외한 응용 형태로, ‘밑바대’를 생략하고 ‘가래바대’만 남아 있다. <표 6>의 D는 <표 6>의 B 와 같이 4개의 대폭을 2개의 대폭과 2개의 중폭으로 변형한 형식이다.
이상과 같이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의 마름도식은 저자의 교수법에 따라 옷감 폭에 차이를 두고, 동일 의복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자료를 활용하는 독자는 개인의 기술 숙련도, 옷감 소요량을 줄이고자 하는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마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마름도식 하단에 기입된 산출공식은 작업의 선후관계를 고려할 때 옷감 폭과 마름도식을 선택한 후 산출공식에 수치를 대입하여 옷감 소요량을 계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볼 때 의복에서 특정한 구성 요소가 옷감 소요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짐작되며, 산출공식에 포함된 의복 구성 요소가 옷감을 구입할 때 구입 총량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고려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재봉』, 『재봉교본』, 『우리나라 옷』에 공통 수록된 여자 저고리·치마·단속곳·바지, 남자 저고리·바지·두루마기를 대상으로 성인복 7종 49건의 산출공식과 공식에 포함된 의복별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표 7>.
산출공식에 포함되는 의복별 구성요소를 정리하면, 여자 의복에서 저고리는 길·소매·끝동, 치마는 폭·허리말기, 단속곳은 폭·허리말기·가래바대·밑바대·아구지단, 바지는 폭·밑·허리말기·끈이 있다. 남자 의복에서 저고리는 길·소매·섶·고름, 바지는 폭(마루폭, 큰사폭, 작은사폭)·허리말기, 두루마기는 길·소매·끝동·섶·무·고름이 있다. 산출공식은 좁은폭 옷감을 사용할 때 복잡해지고, 넓은폭 옷감을 사용할 때 간단해져, 옷감의 너비와 산출공식에 포함된 구성 요소의 수는 반비례하는 특성을 가진다.
좁은폭 옷감에서 상의 품이나 하의 통을 마름할 때는 옷감의 온폭이 사용되어 남은 길이에서 여타 구성 요소를 덜어내야 한다. 그러나 넓은폭 옷감에서는 품이나 통을 덜어낸 후 옷감 폭의 여유분에서 나머지 구성 요소를 덜어낼 수 있으므로 추가 길이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폭이 넓은 옷감을 활용할 때는 길이가 가장 긴 의복 구성 요소를 덜어낸 뒤, 여분의 폭이 나머지 구성 요소의 전체 너비보다 넓은지 파악하면 된다. 이로 인해 옷감을 구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간소해지고, 산출공식도 단순해지는 것이다.
재봉교습서의 산출공식에서도 재단 이론의 발전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산출공식에서 의복의 겹·홑 구성이 점차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다. 홑옷과 겹옷은 의복 구성상 겉과 안의 분리 여부에 대한 구분으로, 겹옷은 옷감이 두 겹이 맞붙어 마름에 필요한 옷감 소요량이 약 2배로 증가하며, 이에 따라 봉제 방법과 순서도 달라진다. 『재봉교본』의 의복명과 바느질 방법을 살펴보았을 때 남녀 저고리와 바지는 겹옷으로 구성되었지만, 산출공식에는 겹옷 여부가 반영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 옷』의 재봉법은 겹옷을 기본으로 하는데, 산출공식에 ‘×2’를 명시하여 겹옷 마름을 고려한 사항이 나타나고, 본문의 ‘어림’ 항목에서도 겉감과 안감을 각각 분리하여 옷감 소요량을 산출하였다.
둘째, 산출공식이 시접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시접은 재봉에서 바느질선 바깥에 생기는 여분의 천을 일컫는 용어이다. 산출공식에 ‘시접’이 표기된 것은 『우리나라 옷』이 유일하지만, 모든 의복의 산출공식에 시접이 포함된 것은 아니고, 여자 옷에서 저고리, 치마, 단속곳, 바지, 삼회장저고리 5종, 남자 옷에서 저고리, 마고자 2종에 한정되어 있다. 시접의 길이도 숫자로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에서 시접을 확인하기 위해 서는 치수표와 마름도식을 대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치수표와 마름도식을 비교하면 마름도식의 수치가 더 크게 기입되어, 마름도식에는 시접이 포함된 상태임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마름도식에서 증가된 수치를 시접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당시 의류 분류 체계상의 특징으로 남자 바지 산출공식에 허리끈과 대님이 제외된 것이 확인된다. 허리끈과 대님은 바지를 착용할 때 허리와 발목을 동여매어 옷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필수 구성 요소이다. 현대 재봉교습서에서는 바지 재봉에 허리끈과 대님이 포함되어 있지만, 근대 재봉교습서에서는 ‘부속품’이라고 하여 토수, 버선, 어깨허리와 함께 별도의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를 통해 남자 바지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바지와 허리끈·대님 2가지 항목을 참조해야한다. 『우리나라 옷』의 남자 바지에도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에 허리끈과 대님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봉제 설명문에 “옷을 짓고 남은 천으로 띠와 대님을 만든다. 띠는 넓이 6cm, 길이 170cm, 대님은 길이 75~80cm, 넓이 3cm이다 (석주선, 1961).”고 하여 전체 옷감에서 여유분을 활용하여 허리띠와 대님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한복 제도(製圖)와 옷본의 보편화
제도(製圖)는 제작하려는 물품의 도면을 의미하며, 현대에는 재봉의 한 과정으로 수행되고 있다. 전근대 의생활 영역에서 제도가 활용된 경우는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수본(繡本)이 대표적이며, 의복의 종류로는 버선본이 가장 많이 남아있으며, 심의본과 저고리본 등이 있다. 유물을 통해 전근대 옷본 활용 방식을 살펴보면, 실물 크기와 축소 크기라는 2가지 규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표 8>. 버선본은 실물 크기 옷본의 대표적인 사례로, 착용자의 발 형태에 맞추어 제작한 뒤 전용 주머니인 버선본집에 보관하였다. 심의는 소매·상의[衣]·치마[裳]·방령(方領)·대(帶) 등 부분 요소에 따라 실물 크기의 본을 활용하기도 하였으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12), 축소 제작하여 치수를 기입하는 방식도 있었다. 이밖에도 의례복인 상복과 일상복인 저고리는 실물을 축소한 형태로 제작하여, 완성품의 형태를 가늠하고 치수를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상과 같이 실물을 본떠 모양을 만들고 치수를 기록하는 방식은 전근대 의복 제작에 활용했던 도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한복재봉에는 양재식(洋裁式) 제도 기호에 맞춰 실물 크기의 설계 도면을 제작하고, 도면을 잘라내어 옷본으로 활용하는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 중 양재식 제도가 처음 활용된 사례는 『조선재봉참고서』의 조끼 제도이며, 『재봉교본』에서는 한복 개량을 다루는 장에서 도판으로 제시되었다. 재봉교습서에 수록 된 전체 한복에 제도가 활용된 것은 『우리나라 옷』이 최초이다. 『우리나라 옷』은 양재식 제도와 동일한 제도 기호를 사용하였으나, 판본의 인쇄 방식에 따라 제도선의 구분이 다소 불분명하다. 1959년 등사본에서는 제도선의 굵기가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1961년 이후 단행본에서는 당시 인쇄술의 한계로 인해 기초선과 완성선 차이가 명확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근대 재봉교습서에 양재식 제도가 적용된 사례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재봉참고서』와 『조선재봉』의 조끼 제도는 등판과 앞판의 1/2을 각각 제시하였다. 앞판은 등판을 기준으로 하되, 목둘레와 앞여밈에 관한 정보만 추가되며, 호주머니(ボケツト, pocket)는 크기별로 대략적인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조끼 앞판 제도는 여밈을 위한 단추와 단춧구멍 위치, 호주머니 위치 정보가 생략되어 비교적 간단한 형식이다. 조끼의 앞뒤 길이가 같고, 품보다 도련 옆선을 길게 빼는 양식은 전통 배자와 유사하다.
반면, 『우리나라 옷』의 조끼 제도는 몸통 1/2에 해당하는 범위로, 앞판 1/2과 등판 1/2이 이어진 형태이다. 앞의 길이가 뒤보다 길고, 옆선에 다트(dart)를 추가하여 입체감이 더해졌다. 또한 도식에 호주머니와 단춧구멍의 위치가 표시되고 치수가 기입되어 있다<표 9>.
한복용 조끼 제도는 선과 선이 만나는 꼭짓점 중 제도상에서 언급이 필요한 부분에 숫자나 영문을 삽입하고, 하단에 설명문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조선재봉참고서』는 등판에 1~15, 앞판에 A~F까지 21개의 지점, 『우리나라 옷』은 앞판과 등판에서 29개의 지점을 표시하였다. 『우리나라 옷』의 조끼 제도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등분 표시와 제도선 활용을 통해 제도 방식의 발전을 보여준다.
제도 설명문은 의복 재단의 중요한 요소인 길이와 품을 먼저 언급하고, 어깨선, 도련, 고대 등 세부 부위를 순서대로 열거하였다. 한복용 조끼 제도의 두드러진 차이점인 도련과 옆선을 비교하면, 『조선재봉참고서』에서는 도련이 뒷품에 1/10을 더한 길이라고 하여 품보다 도련이 더 길다. 반면 『우리나라 옷』은 인체 곡선에 맞게 부채꼴 형태의 다트를 주어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어 품보다 도련이 더 짧다. 또한 조끼 도련의 곡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조선재봉참고서』는 앞중심보다 옆선이 1/10만큼 살짝 올라간다고 하여 앞중심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반면, 『우리나라 옷』은 “앞처짐”이라고 하여 조끼 길이를 기준으로 앞중심이 길어 진다고 설명하며 제도상의 차이를 보여준다.
『재봉교봉』의 본문에서는 저고리 본뜨는 법으로 제도가 활용되었으나, 제도선과 설명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후반부의 ‘Ⅴ.우리 의복의 개량’에 “두꺼운 종이 즉 하트롱종이를 펴놓은 후 권척을 가지고 위의 표준법에 의지하여 길, 소매, 깃, 섶, 골을 만들 것이다(이소담, 1948).”고 하여 저고리 제도에 필요한 도구와 옷본의 종류를 언급하였다. 한복 개량 도안 중 적삼과 버선은 양재식 제도를 활용해 설명하고 있다<표 10>.
기존의 적삼은 길 2장을 직사각형으로 마름하여 등솔을 박음질하는 방식이었으나, 『재봉교본』의 개량 적삼은 앞품 1/2과 뒷품 1/2을 한꺼번에 재단하여 오늘날의 어깨말기본과 유사한 형식이다. 재단 과정에서 신체 곡선을 고려하여 어깨선은 역삼각형인 승모근 형태에 알맞게 비스듬히 깎아내렸고, 소매는 어깨선 지점이 높고 겨드랑이 지점이 낮은 형태인 ‘소매산’으로 제도한 것이 양복 재봉과 유사하다.
이소담은 개량적삼의 깃과 끝동에 불란서 자수를 놓고 교표를 수 놓아 학생복으로 착용하는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이소담, 1948). 이듬해에는 깃이 없는 형태 또는 깃을 접었다 펼치는 유연한 형태를 추가로 고안하였다. 이는 1949년 5월 서울시 신생활촉진회에서 “신생활 적삼”이라는 명칭으로 선정되었으며, 반소매적삼과 통치마는 부인과 학생에게 여름철 의생활 개선 복장으로 권장되었다(동아일보 “女子는 통치마에 적삼 男子는 『노-타이』로 通用하게”, 1949a; 동아일보 “新生活적삼 製作法을 敎授”, 1949b; 조선일보 “여름 “옷”은 이렇게”, 1949)[그림 2].
그러나 서울시의 ‘반소매적삼 장려’는 적극 시행 50일 만에 “반소매적삼은 통 귀뜽으로도 듣지 않는 모양(경향신문 ““반소매”에 “통치마””, 1949a)”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왜정 시대의 소위 몸베 강제장려나 무엇이 다를고?(경향신문 “반소매통치마”, 1949b)”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저항을 받았다. 서울시는 시책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접대부에게 솔선수범하도록 하고 홍보 행사를 벌였으나[그림 3], 이듬해 여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였다. 황의숙(1995)은 1950년대 후반 정부의 신생활운동에 기인하여 전통적인 적삼형태에서 소매만 짧아진 형태의 반소매적삼이 개발되었고, 1960년대 초 유희경(柳喜卿, 1921~2021)이 관복형태 깃으로 변형시킨 반소매적삼을 디자인한 뒤 김활란(金活蘭, 1899~1970)을 비롯한 교육계 지도자, 여대생 사이에서 농촌봉사 활동시 널리 착용되었다고 하였다. 반소매 적삼이 개발된 시기는 차이가 있으나, 이상의 사례는 모두 정부의 생활개선에 따라 제안된 형태이며, 부인과 여학생이 착용을 주도했다는 것이 유사하다.
다음으로, 버선은 ‘발 재는 법’과 ‘골 뜨는 법’으로 구분하여 버선 제작에 필요한 회목, 발잔등, 뒤꿈치, 뒤바닥, 앞바닥 치수 재는 법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골”이라고 칭하는 버선본 제도를 제시하였다<표 11>. 버선 제도 설명문에는 “발바닥 길이만 재 가지고 간단히 하는 법도 있다 (이소담, 1948).”고 하여 기존의 버선본 제작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소담이 제시한 개량 버선은 발바닥 길이라는 필수 정보를 제외하고 ‘회목’이라고 칭하는 복숭아뼈 부근의 잘록한 발목를 기준으로 제도가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골 뜨는 법’에 삽입된 제도는 볼, 뒤축, 뒤꿈치부터 발목에 추가된 곡의 깊이가 수치로 표기되고, 설명을 위해 알파벳이 기호로 활용되었다. 회목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착용자가 본인의 발을 부드럽게 꿰어 넣으면서도, 맵시 있는 외형을 갖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우리나라 옷』은 일상용 한복인 여자옷 8종, 남자옷 5종, 어린이옷 8종까지 총 21종에 양재식 제도를 적용하였다<표 12>. 남자용 버선은 별도 항목으로 구성되었으나, 형태와 제작 방법이 여자용과 유사하여 제도는 생략되었다. 양재식 제도가 제외된 것은 직사각형으로 옷감을 마름하여 폭을 잇는 방식인 치마 1종이 유일하다.
한복재봉에 양재식 제도를 활용한 것은 저자의 연구 지향과 관련이 있다. 석주선은 1948년 “制圖法發表會”를 개최하였고, 20년 이상 한복 재단법을 연구하여 『우리나라 옷』을 간행하였다. 1959년 간행된 『우리나라 옷』에는 “本篇의 原型은 모두 筆者가 製圖한 것이며 韓服의 裁斷은 適當主義를 떠나 學術的인 體系에 依해서 製作할 수 있음을 믿는다(석주선, 1959).”라고 하여, 양재식 제도 도입을 통해 적당주의로 제작되었던 한복이 학술적 체계성을 갖출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양재식 제도가 한복 이론 체계 형성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은 일본 유학 시절 체득한 양재 교육과 조선에서 대중 강좌를 실시하며 느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옷』은 책의 도입부에 가장 먼저 “제도 기호”를 제시하고 있으며, 제도 기호의 종류는 등분선, 기초선, 완성선, 중심선, 안단, 곬, 덧붙임, 직각선, 베는선, 교차선 10종이다. 판본별로 제도 기호를 비교하면, 1959년에 “안단”으로 표기되던 기호가 1961년에 “안선”으로 변경된 것 외에는 모두 동일하다<표 13>.
2023년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학습모듈 『한복 옷본 제작』과 비교하면, 제도 기호 의미는 유사하지만, 현대화된 용어와 추가된 기호들이 보인다. 현대화된 용어로 등분선→등분 표시, 완성선→안내선, 베는선→가위로 에는 표시, 교차선→선의 교차로 수정되었다. 또한 근대 한복 제도에 활용되었던 중심선, 덧붙임 기호 2종이 제외되었고, 식서 방향 표시, 바이어스, 늘림 표시, 줄임·오그림 표시, 주름표시, 주름의 방향, 단춧구멍의 위치 등 11종의 기호가 추가되었다.
『우리나라 옷』의 제도는 일관된 기호를 수록된 의복에 전반적으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앞서 간행된 재봉교습서보다 발전된 형식이다. 제도의 범위는 해당 의복의 주요한 부분만 포함되며, 예컨대 상의는 1/2품, 깃이 달리는 위치, 소매 한쪽을 반드시 제도하였다. 저고리와 두루마기는 앞길 중심에 붙는 겉섶과 안섶의 형태가 다르므로 안섶 제도를 추가였고, 하의는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가 동일해 바지통 한 쪽만 제도하였다. 제도 범위에 따라 유형을 분류하면 <표 14>와 같이 A, B, C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옷』의 제도는 의복 제작에서 주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최적화된 방식으로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옷본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제도에서 옷본으로 활용할 때 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어 사용하며, 섶·무와 같이 사각형이 아닌 부분, 배래·도련과 같이 곡선인 경우, 옷감에 옷본을 놓고 재단선 또는 봉제선을 표시하도록 하였다.
한복재봉에서 옷본 활용은 4가지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첫째, 옷본은 제작자가 만들고자 하는 의복의 완성 형태를 시각화할 수 있어, 마름에서 봉제까지 작업에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착용자의 신체 치수와 체형에 맞춘 정확한 패턴이므로, 어림 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옷감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셋째, 옷본은 재사용이 가능하여 동일한 의복을 여러 번 제작할 때 형태 유지에 용이하다. 넷째, 추후 의복 형태를 변형하고자 할 때 옷본을 기준으로 수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따라서 옷본을 활용한 재단은 작업 효율과 실용성을 높여 근대 한복 제작 방식을 변화시킨 주된 요소로 작용한다.
Ⅳ. 결론
본 연구는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를 통해 한복 재단 방식의 변화를 분석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근대 한복 재단에서는 옷감 소요량 산출, 마름도식, 산출공식, 제도를 도입하여 옷감 소요량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통해 한복 재단의 정밀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근대 초기 재봉교습서는 1925년부터 옷감 폭과 착용 연령에 따른 소요량을 정리한 산출표가 등장하였다. 옷감 폭에 따라 다양한 마름 방식을 제시하고, 일부 재봉교습서에서는 특정 옷감 폭에서 여러 종류의 마름 방식과 산출공식을 제공하였다. 마름도식은 식서 표시가 생략되었으나 식서 방향에 맞춰 재단하여 효율적인 옷감 활용을 목표로 하였으며, 산출공식은 옷감 소요량을 정밀하게 계측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은 겹옷 구성을 고려하여 옷감 소요량을 2배임을 표기하고, 기존에 제외되었던 시접이 반영되는 등 점진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또한 전근대 의생활에서는 실물 크기와 축소 크기의 옷본을 활용하여 완성품을 가늠하고 치수를 확인하는 정도의 도면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근대 재봉교습서는 양재식(洋裁式) 제도를 도입해 실물 크기 설계 도면을 제작하고 이를 잘라내어 옷본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 우리나라 옷』은 여자옷, 남자옷, 어린이옷 총 21종에 일관된 제도 기호를 적용하고, 주요 부분만 제도하는 최적화된 방식으로 재봉의 효율성을 높였다.
근대 한복 재단이 오늘날 한복 제작에 미친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근대 교습서에서 체계화된 마름도식과 산출공식은 현대 한복 재단 과정에서 정확한 옷감 소요량 산출의 기반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옷감의 효율적 사용과 경제성과 실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둘째, 양재식 제도 기호의 도입은 한복의 재봉을 정량적이고 표준화된 작업으로 변화시켜 한복의 일관성과 품질 보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근대 재봉교습서에서 확립된 이론은 현대 한복 제작에서 옷본을 통한 실용적인 패턴 사용과 맞춤형 제작을 가능하게 하여, 다양한 체형에 맞춘 정확한 한복 제작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듯 근대 한복 재단 이론은 전통적 한복 제작 방식을 체계화하며 현대 한복 제작 방식의 기틀을 형성하였다. 이로 인해 한복재봉의 표준화와 학문적 접근이 가능해졌으며, 현대 한복 제작 방식은 근대적 체계화를 바탕으로 실용성과 정확성을 높인 작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박사학위논문의 일부를 수정 및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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