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아동센터 장애아동 멘토링 경험을 통한 나의 장애인식 변화: 자문화기술지 연구
ⓒ 2026, Korean Association of Human Ecology. All rights reserved.
Abstract
Existing research on disability perception has largely concentrated on developing and evaluating awareness programs, which has limited deeper investigations into the nature of perception itself. Given that perception is a complex, subjective concept shaped by individual-environment interactions, there is a need for research that thoroughly explores personal experiences and transformations. This study uses autoethnography—a qualitative method applying self-narrative to understand personal experiences within a sociocultural context—to examine shifts in the primary researcher’s perceptions and emotions toward disability. These shifts occurred through mentoring a child with a disability at a community child center. The findings uncover two main themes: ‘reflection,’ with sub-categories of ‘fear and relief,’ ‘condescending superiority,’ and ‘powerlessness as an educator’; and ‘realization,’ subdivided into ‘from object to being,’ ‘from defect to difference,’ and ‘from despair to possibility.’ Based on these findings, the researchers discuss personal growth and transformation and offer suggestions for improving societal perceptions of disability.
Keywords:
Autoethnography, Disability, Disability awareness, Community child center, Mentoring, Reflection and realization키워드:
자문화기술지, 장애, 장애인식, 지역아동센터, 멘토링, 반성과 깨달음Ⅰ. 서론
본 연구는 연구자의 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 과정을 성찰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연구자는 학창 시절부터 최근까지 장애인과의 반복된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장애인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형성하였다. 즉, 장애인은 나와 동등한 관계를 맺는 타자가 아닌,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이거나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특수 및 통합교육 수업을 수강하고, 자폐성 장애아동의 멘토링을 경험하게 되면서 기존의 인식에 점진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장애아동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은 장애를 이론적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연구자의 인식 전환을 촉발하였다.
한국의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0.1%에 달한다(이민경 외, 2024).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와 기관들은 장애인식교육을 확대해 왔으나, 실제 교육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이종남, 한상미, 2018), 그 내용도 대부분 장애 관련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이대식, 김수연, 2013). 특히 장애인식개선교육이 법적 의무로 시행되면서, 교육의 본래 취지보다는 형식적 이수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향이 있다(이원무, 2022). 이는 교육이 제도적으로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인식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외재적 지식 전달에 집중되면서, 개인이 지닌 감정과 태도, 그리고 무의식적 편견을 성찰할 기회는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감정,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복합적이고 주관적인 과정이다(김두희, 2020; 서미경, 이민화, 2024; 이신영 외, 2019; 이혜선 외, 2024; Babik & Gardner, 2021; Munyi, 2012). 따라서 장애인식의 실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지식 전달 중심의 접근을 넘어,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감정 구조를 재구성할 수 있는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들은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인식 변화 과정을 탐구하는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에 주목한다. 자문화기술지는 연구자의 경험을 자료로 삼아 사회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질적연구방법으로, 특히 개인의 내면 변화와 감정 구조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데 유용하다(강은희, 2023a, 2023b, 2023c; 이도희, 2019; Svendby et al., 2018). 개인 내부 자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질적연구방법과 차별성을 갖는 자문화기술지(이동성, 2012)는 개인의 장애 경험을 성찰적으로 기술하고 사회문화적 의미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장애 분야의 의미 있는 연구 수행에 적합하다고 본다(박부경, 2017; 박성옥, 김성훈, 2017; 이원희, 곽승철, 2014).
장애(특수, 통합)와 관련한 자문화기술지 연구는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흐름을 보이며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연구들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교육 신념과 인식의 변화를 성찰한 자문화기술지로, 특수교사, 통합학급 교사 등이 장애 학생 지도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로서의 위치성과 감정, 실천적 고민을 고백하며 교육적 전환을 탐색한 연구들이다. 시각장애 학생 사진 수업(김미남, 2022), 시각장애 학생 피아노 교수(박부경, 2017), 읽기장애 학생 지도(박성옥, 김성훈, 2017), 자폐성 장애아동 지도(조재성, 2023), 특수교사의 교육신념 변화(진현경, 홍재영, 2023) 등은 모두 교사 개인의 체험을 통해 교육 주체로서의 혼란과 성찰의 과정을 상세히 드러내며, 장애 학생을 위한 학급 운영과 수업 개선 등을 논의한다.
둘째, 장애 가족(부모, 자매, 배우자)으로서의 삶과 감정, 그리고 장애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 변화를 탐색한 자문화기술지로, 장애를 가족이라는 밀접한 관계 안에서 경험하며 정체성의 재구성과 내면적 수용 과정을 조명한 연구들이다. 조현병 어머니를 둔 자녀(안소영, 김명찬, 2024), 비장애 자매(유민지, 박주연, 2023), 지체장애인 배우자(이도희, 2019),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최수미, 김성길, 2021) 등의 사례는 단순히 보조자나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장애를 대하는 개인의 혼란, 갈등, 수용, 성장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자문화기술지 자체의 이론적 가능성과 장애 분야에서의 활용 가치를 분석한 연구로, 자문화기술지가 장애 인식과 교육 실천을 전환하는 방법론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연구들이다. 서유진(2020)은 특수교육 분야의 자문화기술지 분석을 통해 장애 이해와 공감, 교육현장의 변화를 이끄는 실천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강은희(2023a, 2023b, 2023c)는 자폐성 장애아동과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문화기술지 연구를 수행하며 장애인복지에서 자문화기술지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논하였다.
이렇듯 기존의 장애 관련 자문화기술지 연구는 대부분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교사와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들은 장애를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교육이나 돌봄이라는 맥락 속에서 문제를 직면하기 때문에 자문화기술지를 통해 심층적인 감정 변화와 정체성의 재구성을 성찰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는 강점을 갖는다. 그러나 장애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내부자의 관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사회적 확장성과 대표성에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즉, 연구자들이 대부분 장애와 ‘직업적’ 또는 ‘가족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내부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서사는 장애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일반인이 지닌 막연한 두려움과 거리감, 일상적 편견을 탐구하는데 제한적일 수 있다. 현재 장애인과 일상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부족한 ‘일반인’의 관점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성찰하는 연구는 부재한 실정이다. 이러한 공백은 장애인식 개선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는데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탐구하는 연구는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 대상의 장애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연구는 비장애인으로서 갖는 장애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 차이를 대하는 태도 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인식과 편견을 직면하게 만드는 윤리적 자기성찰의 도구로 기능한다. 특히 ‘감성적 자문화기술지(emotional autoethnography)’는 연구자의 경험을 통해 독자가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자기성찰을 수행하도록 유도한다(Ellis & Bochner, 2000)는 점에서 장애인식을 단순한 이해의 수준을 넘어 개인의 삶과 연결된 문제로 재구성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일반인’의 장애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 변화 과정을 심층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감성적 자문화기술지’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1연구자가 지역아동센터에서 멘토링한 자폐성 장애아동 P군과의 상호작용 경험을 성찰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연구자의 장애에 대한 감정과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론적 기반으로는 비고츠키(Vygotsky)의 손상학(Defectiology) 개념을 도입하였다. 비고츠키는 장애를 단순히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규정하지 않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할 ‘발달적 특성’으로 보았으며, 장애인 또한 적절한 사회적 환경과 지원을 받을 경우, 잠재력을 발휘하며 발달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정은, 2007, 2009; Vygotsky, 1983/1993). 이러한 관점은 장애인을 결함이나 결핍의 대상이 아닌 가능성과 성장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본 연구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식을 탐구한 자문화기술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연구자 개인의 편견과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연구의 진실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연구자의 정직한 고백이 독자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인식의 사각지대를 스스로 비추어 보게 하는 성찰의 거울로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지식 전달 접근에서 벗어나 교육 대상자의 장애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을 직면하고 표출할 수 있는 성찰 중심 교육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폐성 장애아동의 멘토링 경험 속에서 연구자의 장애인식과 감정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Ⅱ. 연구방법
1. 연구자와 P군
제1연구자(이하 ‘연구자’라 칭함)는 현재 36세로, 약 9년의 유아교사 경력을 가지고 있고 2명의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 그리고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수료생이다. 연구자 내면에는 오랜 시간 장애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창 시절 버스에서 겪은 장애 남학생에 의한 성추행, 자폐성 장애 남학생의 자위행위 목격과 이를 둘러싼 친구들의 놀림, 그리고 장애 성인에게 당한 신체적 폭행 등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성인이 된 후 직장에서 반복되는 장애 동료의 과실을 떠안아야 했던 경험 또한 이러한 인식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이후 교사와 부모로서 매년 자폐성 장애(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을 마주했지만, 이는 이해보다는 거부감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연구자에게 장애인은 ‘가능하다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 ‘내 삶의 반경 밖에 있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그러나 2024년,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유아특수교육 수업에서 자폐성 장애에 대해 발표하고, 같은 해 방학 ‘다문화·탈북학생 멘토링 장학 사업’을 통해 자폐성 장애아동 P군의 멘토가 되면서부터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장애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장애인의 ‘삶’ 자체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P군과 함께한 시간은 장애인의 삶이 가진 막막함을 체감하게 했고, 동시에 ‘과연 내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초기에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나 후원 같은 시혜적 행동을 떠올려 보았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기쁘게 그 일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은 저항감이 앞섰다. 여전히 그 삶을 포용하기 주저하는 자신을 보며, 연구자는 ‘장애를 불편해하는 나’라는 실체와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내면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담아내기 위해 연구자들은 ‘자문화기술지’에 주목했다. 이는 연구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자료를 수집 · 분석 · 해석하여, 개인의 사고와 의식의 변화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드러내는 질적연구방법으로(김호현, 2022), 연구자의 편견이 해체되고 인식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기술하기에 적절한 도구라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품고, 멘토링 과정에서 마주한 연구자의 ‘인식과 감정의 변화를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연구자가 자신의 인식을 성찰하게 된 구체적인 장은 지역아동센터이며, 이곳에서 연구자의 성찰을 이끌어 낸 주요한 타자는 자폐성 장애를 지닌 P군이다. P군은 연구 당시 9세였으며, 유아기 때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았다. 자폐성 장애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과 활동을 보임으로써 교육적 성취 및 일상생활 적응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를 말한다(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2025, 이하 '특수교육법').
P군은 일반 초등학교에서 일반교사, 특수교사, 활동전담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하교 후에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여러 멘토와 생활복지사 등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다. 가족은 다문화 가정으로,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지적 장애가 있는 형, 그리고 P군으로 총 4명이다. P군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달걀 모양의 공과 알파벳 쓰기를 좋아하고, 갑작스럽게 창고나 상자, 서랍을 뒤지려고 하며, 일상적인 눈 맞춤과 대화가 힘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연구자는 2024년 6월 11일부터 8월 29일, 2025년 1월 2일부터 6월 20일까지 주 2~3회, 1회 2~3시간 P군을 만났고, 이는 연구자 혹은 P군의 개인 사정에 따라 조정 및 변경되었다. P군을 만나기 전, 연구자는 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가르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결심했으나, 실제 만남의 과정은 이 결심을 지켜내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이었다. 센터에 오자마자 가방을 멘 채 집에 가겠다며 서 있는 P군 옆에 나란히 서 있거나, 어두운 구석에서 반짝이는 공을 반복해서 때리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행위는 연구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P군의 돌발적인 행동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고,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그를 해석하려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깊은 반성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본 연구의 주요 텍스트가 된 P군과의 시간은 연구자가 지닌 인식의 한계를 정직하게 시인하고, 그 너머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분투했던 치열한 성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연구 절차
본 연구의 자문화기술지 유형은 ‘감성적 자문화기술지’로 연구자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자의 경험을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독자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어 자기성찰을 유도하는 것을 강조한다(Ellis & Bochner, 2000). 이러한 방법론적 지향에 따라 자료 수집, 자료 분석, 자문화기술지적 글쓰기, 타당도 확보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수행하였으며, 구체적인 연구 흐름은 [그림 1]에 제시하였다.
자문화기술지의 자료들은 자기회상(self-recall) 자료, 자기성찰(self-reflection) 자료, 자기관찰(self-observation) 자료, 면접(interview) 자료, 문화적 인공물(cultural artifact) 자료, 문헌(literature) 자료로 구분할 수 있으며(박순용 외, 2010), 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드 노트(field note), 회의록(meeting minutes) 등 문서 증거 자료(documentary evidence)를 추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Duncan, 2004).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에 활용하였다(Duncan, 2004). 첫째, 연구자 개인의 기억을 토대로 한 자기회상(self-recall) 자료를 수집하였다. 둘째, 대학원 수업과 멘토링, 일상적 경험 속에서 얻은 통찰을 기록한 메모와 저널 등 자기성찰(self-reflection) 자료를 확보하였다. 셋째, P군과의 멘토링 과정에서 기록한 관찰 기록지인 필드 노트(field note)를 활용하였다. 필드 노트는 단순한 현장 관찰 기록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의 즉각적인 감정 반응과 성찰이 포함된 성찰적 필드 노트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기재 시 필드 노트와 자기성찰 자료가 혼재된 형태로 제시될 수 있다. 수집된 자료들은 출처, 날짜, 장소 등을 기입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였다.
자문화기술지의 자료 분석을 위한 코딩과 범주화 방법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기존 질적연구에서 활용되고 있는 코딩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김영천, 이동성, 2011). Saldaña(2009)는 정서적 혹은 정의적 방법으로서 4가지 코딩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감정 코딩(emotion coding), 가치 코딩(value coding), 대비 코딩(versus coding), 평가 코딩(evaluation coding)이다.
본 연구는 연구자의 내면 경험을 핵심자료로 삼는 만큼 감정 코딩과 대비 코딩을 적용하였다. 감정 코딩은 연구자의 경험과 회상한 정서를 분석하는 것으로(Saldaña, 2009) 연구자의 관점이나 세계관, 삶의 조건과 통찰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강윤아, 신현기, 2019). 본 연구에서는 이를 통해 ‘반성’의 ‘공포’, ‘안도감’ 등의 정서 반응이 범주화되었다. 대비 코딩은 개인, 집단, 사회체제, 조직, 현상 등을 이항대립적인 용어(binary terms)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연구자 내부의 강력한 갈등을 드러낼 때 유용한 방식이다. 예로 ‘X vs. Y’, ‘교사들 vs. 행정가들’, ‘일 vs. 놀이’ 등이 있다(강윤아, 신현기, 2019; 김영천, 이동성, 2011; Saldaña, 2009). 본 연구에서는 ‘깨달음’의 ‘대상에서 존재로’ 등이 대비 코딩을 통해 분석되었다.
이 두 가지 분석 방법은 연구자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감성적 자문화기술지에서 적절한 코딩 방법으로 사료된다. 이 같은 분석 틀을 거쳐 연구 질문에 부합하는 핵심 주제들을 도출하였고, 연구자의 인식 변화 단계와 체험의 맥락에 따라 서사적 흐름으로 재구성, 배치하였다.
자문화기술지적 글쓰기는 학문적인 글쓰기 방식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김영천, 이동성, 2011). Chang(2013)에 따르면, 자문화기술지에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 유형은 기술적-사실적 글쓰기(descriptive-realistic writing), 고백적-감성적 글쓰기(confessional-emotive writing), 분석적-해석적 글쓰기(analytical-interpretive writing), 상상적-창조적 글쓰기(imaginative-creative writing)가 있는데, 연구자는 연구 목적과 주제에 따라서 4가지 글쓰기 방식을 혼합하거나 재구성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 질문의 본질과 감성적 자문화기술지라는 방법론적 특성에 부합하도록 다음과 같은 글쓰기 전략을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첫째, 기술적-사실적 글쓰기를 통해 연구자와 P군의 만남이 이루어진 현장의 맥락과 P군의 행동 특성, 연구자의 반응 등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였다. 둘째, 고백적-감성적 글쓰기를 활용하여 연구자가 경험한 정서적 혼란과 깨달음을 솔직하게 기술함으로써 독자가 연구자의 내적 갈등에 감응하고 성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분석적-해석적 글쓰기를 적용하여 연구자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다 거시적인 사회문화적 담론 및 이론적 기반과 연결함으로써 사적인 경험의 의미를 학술적으로 확장하였다.
자문화기술지는 다른 질적연구방법과 달리 개인적 자료에 의존해 기술되기 때문에 공적인 타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다(이동성, 2012). 이에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자문화기술지의 이론적 개념과 특성, 방법론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통해 연구의 질적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Duncan(2004)이 제시한 자문화기술지의 질을 평가하는 네 가지 준거, 즉, 도구적 유용성(instrumental utility), 구성 타당도(construct validity), 외부 타당도(external validity), 신뢰성(reliability)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하였다.
첫째, 도구적 유용성을 확인받고자 특수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 1인에게 본 연구의 유용성에 대해 검토받았다. 둘째, 구성 타당도를 높이기 위해 질적연구 수행 경험이 풍부한 사회과학전공 교수 1인에게 연구 설계와 기술 방식의 적절성을 확인받았다. 셋째, 외부 타당도를 확보하기 위해 2인에게 검토받았다. 여기서 외부 타당도란 양적연구에서의 일반화 가능성과 다른 개념으로, 연구자의 경험이 유사한 맥락에 있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고 공명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Duncan, 2004). 먼저, 유아교육과 교수 1인으로부터 본 연구 주제와 발견의 전이 가능성을 학문적 관점에서 검토받았다. 또한 자문화기술지 연구에서 가까운 타자의 반응과 확인 과정을 중요하게 제시한 바에 따라(Ellis, 2007), 장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인 1인에게 연구자의 경험이 일반 독자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고 공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넷째,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료 수집 및 분석의 전 과정에서 연구자의 해석이 특정 편견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경험을 의도적으로 미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엄격하게 질문하는 성찰적 자기 심문을 지속하였다. 또한 공동 연구자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연구자의 주관적 해석이 학문적 맥락 안에서 적절하게 기술되고 있는지를 점검받는 동료 검토(peer review)를 병행하였다.
3. 윤리적 고려
본 연구에서는 윤리적 고려를 위해 류동춘 외(2014)가 제시한 정직성(honesty), 개방성(openness), 주의 깊음(carefulness), 연구대상의 존중(respect for subjects), 비밀 준수(confidentiality)의 연구윤리 원칙을 준수하였다. 첫째, ‘정직성과 개방성’을 준수하기 위해 연구의 계획부터 자료 수집 및 분석, 기술에 이르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였으며, 연구 기법과 도출된 자료의 성격을 학술적 근거에 기반하여 있는 그대로 보고하였다. 둘째, ‘주의 깊음’의 원칙에 따라 멘토링 과정에서 얻은 필드 노트와 성찰 저널 등 원시 데이터를 개인 저장 장치에 보관하여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였다. 셋째, ‘연구대상의 존중과 비밀 준수’를 위해 관계적 윤리를 실천하였다. 본 연구의 성찰적 매개가 된 P군과 그 주변인들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모든 이름은 가명 혹은 호칭으로 기재하였으며, P군에 대한 정보는 독자가 연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최소한으로 제시하여 식별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추가적으로 자문화기술지적 글쓰기의 특성상,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성찰적 진실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연구자의 주관적 경험을 다루는 만큼,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표현을 지양하였다. 또한 연구자의 변화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경험을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미화하지 않았으며, 감정과 인식의 변화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끊임없이 자신의 서사를 점검하였다.
Ⅲ. 연구결과
1. 반성: 내면화된 에이블리즘(Ableism)1)
연구자는 교육자로서 장애에 대한 당위적 포용성을 학습해 왔으나, 실제 현장에서 마주한 장애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공포라는 감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면의 감정은 또 다시 연구자를 얼어붙게 했고, 이는 멘토링 첫날 P군과의 만남에서 바로 드러났다.
멘토링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센터 교실로 들어선 P군은 익숙한 듯 가방을 정리했다. 긴장 반, 기대 반으로 P군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P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P군이 갑자기 센터장실을 지나 밖으로 돌진했다. 센터장실에 있던 공익근무요원이 황급히 막아섰으나 놓쳐버렸고,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는 P군의 뒤를 쫓았다. P군은 어린이집 창고 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가 무언가를 거칠게 뒤지기 시작했고, 나는 공익근무요원과 함께 P군을 제지하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그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센터장과 어린이집 원장을 만났다. 센터장은 당황한 나를 보고 “아, 선생님이군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단호하고 큰 목소리로 P군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잡고 센터 교실로 이끌었다. 첫 만남의 기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온몸의 진이 빠진 채 P군과 센터장의 뒤를 따랐다.
—(2024. 6. 필드 노트).
이날 연구자가 마주한 것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공포였다. 장애를 편견 없이 포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던한 척 다가가려 했던 연구자의 노력은 P군의 돌발적인 질주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P군을 쫓는 긴박한 과정에서 연구자를 지배한 것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통제불가능한 장애인의 역동성에 압도당한 아브젝시옹(Abjection; Schoolcraft & Anderson, 2023)2)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센터장이 강한 태도로 P군을 제압하여 상황을 종료시키는 모습에서 연구자는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이러한 이면의 안도감은 멘토링이 반복될수록 더욱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P군의 일정에 맞춰 멘토링을 나갔기에 늘 그와 함께했지만, 종종 P군이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느 정도 친해진 여자아이들이 나에게 머리를 묶어달라고 했다. P군과 함께 있느라 미처 나누지 못했던 다른 아이들과의 소소한 교감은 내게 즐거운 휴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즐거움 이면에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었다. 센터에 출근해 P군의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2024. 7. 자기성찰 자료).
비가 세차게 오는 화요일, 센터 바깥쪽에서 P군의 비명이 들려왔다. 활동지원사의 손에 이끌려 센터에 들어온 P군은 벗어나려 안간힘을 쳤다. 학교에서부터 심했고, 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 건지, 오늘 유독 힘들다며 활동지원사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는 P군을 보고 너무 놀랐고, 두려웠다 속으로 ‘이 정도면 집에 가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던 순간, 센터장이 가정에 연락을 취했고, 센터에 들어온 지 약 30분이 지났을 무렵 아버님이 오셔서 P군을 데리고 갔다.
—(2024. 8. 필드 노트).
P군의 부재 상황에서 느낀 이 묘한 안도감은 연구자에게 해방감과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때로는 이러한 순간이 멘토링 내내 자주 찾아오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이토록 밝히기 부끄러운 마음의 소란은 P군의 멘토로서 지켜야 할 마음가짐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연구자를 괴롭혔고, 동시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장애에 대한 깊은 거부감과 두려움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첫째 아들이 4살 무렵 놀이터에서 장애아동을 만났던 기억은, 연구자가 장애인을 어떻게 삶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며 거리를 두어 왔는지를 정직하게 마주하게 한다.
여느 때처럼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끔 마주치던, 등이 굽고 지적장애를 가진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날따라 그 아이는 노는 내내 우리 아들의 뒤를 쫓아다녔고, 아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과격한 행동들을 보였다. 의자를 너무 세게 흔들거나 숨이 막힐 정도로 껴안는 등 힘 조절이 되지 않았고, 아들은 결국 아파하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나는 아들에게 “형이 너랑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런가 봐”라고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그 아이의 할머니가 강력히 제지해 주길, 그래서 나와 내 아이가 이 불편한 상황에서 어서 멀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 아이의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자,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꺼내 남자 선생님의 사진을 보여주며 외쳤다. “너 자꾸 말 안 들으면 선생님 오시라고 할 거야!” 아이는 사진을 보자마자 주춤하며 얌전해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시뿐이었고, 결국 할머니는 아이를 강제로 데리고 놀이터를 떠났다.
—(2025. 1. 자기회상 자료).
당시 연구자는 겉으로는 포용의 언어를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장애 아이의 보호자가 개입하여 이 통제되지 않는 불편함으로부터 조속히 분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녀에게 건넨 “형이 너랑 놀고 싶은가 봐”라는 말은 진심 어린 수용이 아니라, 당혹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비겁한 방어 기제였음을, 사진을 보고 공포에 질려 주춤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안도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나의 안락함을 지켜내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나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았던 이기만적인 태도는 결국 나의 안정을 위해 타자의 존재를 밀어내려는 시도였다.
이렇듯 장애인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 안도감은 연구자가 지향해 온 교육적 가치와 내면의 편견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드러낸다. 이는 장애 신체(disabled body, Schoolcraft & Anderson, 2023)가 환기시키는 인간의 본질적인 취약성을 마주하기보다, 나의 견고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타자를 밀어내며 거리를 두려 했던 비겁한 태도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자기 직면은 장애의 사회적 통합을 논하기에 앞서 비장애인 연구자가 지닌 견고한 편견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졌다. 결국 불편함의 실체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P군이라는 한 존재와 동등한 관계 맺기를 위한 성찰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연구자가 P군을 대하며 마주한 두 번째 감정은 측은지심이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다. P군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감정의 이면에는 연구자가 비장애인으로서 더 우월하고 안정된 위치에 있다는 전제가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곧 시혜적 우월감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출발점이었다.
센터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P군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P군의 돌발행동을 예방하는 데 집중했고, 또래들은 P군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편이었다. P군과 함께 약 2~3시간의 멘토링 시간 내내 현관 앞에 앉아 있는 날이면 그러한 대우를 받는 P군이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졌다. (P군은 혼자서 센터 밖을 나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신발과 가방을 멘 채로 현관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2024. 7. 필드 노트).
P군이 센터에 오기 전, 희망이가 머리를 묶어달라고 했다. 내가 “P군이 오기 전에 빨리 머리 묶자”라고 말하자, 희망이가 “P가 없어도 샘(선생님)이 왔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래? 오면 같이 놀자”라고 대답했더니, “P랑 친구 아니에요. P가 소리치고 마음대로 하면, 혼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2025. 1. 자기회상 자료).
연구자가 목격한 P군은 센터라는 공동체 내에서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현관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P군을 보며 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을 박탈당한 것 같은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어야 하는 상황은 분명 부당한 일이었다. 특히 또래 아동인 희망이가 던진 발언은, 장애로 형성된 견고한 경계가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서열과 배제를 만들어내는지 를 분명하게 보여준다(임연수, 김희연, 2010). 교육자로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가 연구자를 끊임없이 채근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P군을 거부하는 또래 아이들의 목소리에 내심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질서를 깨뜨리는 존재와 함께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피로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이해된다’는 사실은 연구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P군이 겪는 소외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거부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는 교육자로서 P군을 밀어내는 아이들이나 선생님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P군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곧 ‘내가 도와야겠다’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나라도 P군을 소외시키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P군이 어떻게든 센터 교실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나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P군을 위한다는 마음은 언뜻 숭고해 보였으나, 사실 이는 P군의 욕구에 깊이 공감한 결과라기보다 나 자신의 도덕적 결벽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가까웠다. 결국 내면의 거부감을 숨긴 채 성숙한 어른이라는 가면을 썼던 연구자의 기만은 P군이 욕구를 행동으로 옮기려 했던 시도에서 여실히 그 한계를 드러냈다.
대체 생활복지사가 근무하는 날이었다. 그는 문 앞을 서성이는 P군을 보고 나에게 동반 산책을 제안했다. 둘이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P군이 횡단보도로 뛰어가려 했고, 복지사가 그를 재빠르게 제지했다. 복지사는 이전의 비슷한 상황을 언급하며, 아무래도 산책은 힘들 것 같으니 다시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결국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복지사와 함께 P군의 양팔을 잡고 센터 안으로 돌아와야 했다.
—(2025. 1. 필드 노트).
P군은 색종이를 잘게 잘라 뿌리는 놀이를 좋아했다. 함께 그 놀이를 하던 중, 활동지원사가 P군을 데리러 왔다. 흩뿌려진 색종이를 정리하며 인사를 건네는 나를 보고 활동지원사가 “색종이 놀이는 하지 못하게 하세요”라 고 말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센터에서 이 놀이를 허용하면 학교에서도 하게 되고, 그것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는 왜 그 놀이가 학교생활에 방해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당시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2025. 1. 필드 노트).
이 두 가지 사건은 연구자가 교육적 선의라는 이름 뒤에 숨겨온 시혜적 우월감의 실체를 깨달은 기록이다. P군을 위해 용기 있게 나섰던 산책이 단 5분 만에 ‘양팔을 잡고 들어오는’ 물리적 제압으로 끝났을 때, 연구자는 진실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P군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준비 없이 행한 나의 친절은 결국 그의 안전을 담보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올바른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려 했던 무모한 시도에 불과했다. P군의 팔을 조인 연구자의 손은 조력자의 손이 아니라, 통제를 벗어난 타자를 다시 나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권력자의 손이었다.
나아가 P군이 유일하게 몰입했던 색종이 놀이를 제지하는 활동지원사의 논리에 갈등하면서도 침묵했던 순간은, 그에게 가해지는 일련의 권력 시스템에 은밀히 동조하는 지점이었다. 겉으로는 P군을 위하는 척했으나, 정작 그의 주체적인 기쁨보다 비장애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학교와 사회의 안녕을 우선시했던 권력의 한 행위였던 것이다. 이처럼 연구자가 베푼 친절은 그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 환대가 아니라 시혜적 우월감의 하나였으며, 이는 과거 은행에서 장애인을 만난 기억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은행에서 신체적 장애가 있는 한 남성을 보았다. 그는 구부정한 자세와 어눌한 발음으로, 청원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번호가 되어 창구로 이동한 그는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우연히도, 그가 업무를 보게 된 창구가 내가 업무를 보았던 창구였는데, 그 순간 청원 경찰과 은행원이 그를 예의주시하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마치 어떤 사고가 나기 전의 서늘함과도 비슷했다. 과거의 나라면 회피했을 상황이었지만, 그날은 보완대체의사소통 도구가 마련되지 않은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도움을 줄 상황이 생길 것 같아 잠시 대기석에 머물렀다.
—(2025. 1. 자기회상 자료).
이 기억은 연구자가 스스로 장애를 이해할 준비가 된 존재라고 믿었던 그 지점이 얼마나 기만적인 인식이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과거처럼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보완대체의사소통의 부재를 고민하며 도움의 기회를 기다렸던 나의 태도는, 언뜻 진보한 인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유능한 주체’이며, 장애인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무력한 대상’이라는 위계적 전제가 깔려있었다.
사실 나의 기다림 안에는 ‘그가 은행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무슨 용무가 있어 온 거지?’, ‘보호자는 없는 건가?’라는 의구심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결국 연구자가 대기석에 머물며 보냈던 그 시간은 타자에 대한 순수한 염려라기보다, 비장애인으로서 누리는 자신의 안정된 위치를 확인하고 만족하고 싶어 했던 욕구에 가까웠다. P군과의 산책을 결정할 때 느꼈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그의 색종이 놀이를 지키지 못한 채 침묵했던 비겁함, 그리고 은행에서 조력자를 자처하며 머물렀던 그 오만한 배려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이었다. 이는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비장애인이라는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자의 약함을 교묘히 이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처럼 내면에 깊이 박힌 시혜적 우월감을 직면하는 과정은, 교육적 당위라는 허울 아래 감추어둔 나의 권위주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해체의 작업이었다. P군이라는 타자의 존재는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불편한 감정들은 내가 교사로서 지향해 온 태도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게 하는 강력한 동력(유민지, 박주연, 2023)이 되었다. 연구자는 비장애인이라는 심리적 우월감을 내려놓고 자신의 오만을 정직하게 응시함으로써, 비로소 타자를 관리와 시혜의 대상이 아닌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마주할 수 있는 성찰적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연구자가 자신의 무력감을 직면하는 과정은 P군과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필수적 단계였다. 9년 차 유아교육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연구자에게 P군과의 만남은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얼마나 파편적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연구자는 장애 중재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P군의 선호 강화물을 철저히 분석하여 현장에 나갔으나, 이론은 실제 아이의 욕구 앞에서 빈번히 무력해졌다.
평소 공 모양의 장난감을 고집하는 P군의 특성을 고려하여, 조명이 나오는 여러 모양의 탱탱볼을 준비해 갔다. 매일 달걀 모양 장난감을 들고 다니는 P군에게 이것들은 매력 있는 장난감이었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다. 다음에는 P군이 특정 업체의 택배 상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크기별로 상자를 준비해갔다. 그러나 P군은 내가 준비한 상자가 아닌, 센터장실 책상 밑에 놓인 그 상자에만 집착했다. 장애아동의 관심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여러 강화물을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지식은 생각보다 빨리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름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을 빗나가는 아이의 반응을 마주하며, 스스로에 대한 한계와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2025. 5. 필드 노트 및 자기성찰 자료).
나름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유아교사로서 쌓아온 경험이 있기에 P군을 충분히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초기에 느꼈던 공포나 거부감 역시 이러한 준비로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 나의 중재가 P군에게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처하기 어려운 돌발 행동들은 중재 방법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 내게 공포로 다가왔고(진현경, 홍재영, 2023), 나의 시도들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견고했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고, P군에 대해 그리고 장애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러한 무력감은 소통의 시도에서도 반복되었다. 연구자는 교육자로서 논리적인 설명과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려 노력했으나, 이는 오히려 P군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가르치려 할수록 소통은 어긋났고, 연구자의 전문성은 P군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이상적인 역할 모델에 자신을 투영하여 현실을 통제하려던 시도는 오히려 대상과의 진정한 만남을 방해하는 장벽이 될 뿐이었다(최수미, 김성길, 2021).
P군이 색종이를 얇게 잘라 여러 겹 겹치더니 둥글게 말아 내게 건네며 “별, 별”이라고 말했다. 내가 “별 모양으로 잘라달라고?”라고 물으니, 내 손을 이끌어 가위를 잡게 하며 다시 한 번 “별, 별”이라고 말했다. 내가 종이가 너무 두꺼워 가위질이 어렵다고 설명하며 한 장만 줄 것을 권했다. 그리고 내가 1장만 꺼내 자르려고 하니, 내 손에서 종이를 뺏어 다시 여러 겹으로 겹친 뒤 “별, 별”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 장만’을 고집하는 나와 ‘겹쳐진 종이 뭉치’를 고집하는 P군 사이의 실랑이가 몇 분간 반복되었다. 결국 P군은 “아! 아악!” 소리치며 화를 냈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위와 색종이를 던진 뒤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당황한 내가 뒤늦게 억지로 두꺼운 종이를 잘라냈으나, 일그러진 색종이를 본 P군을 책상을 내리치며 한 번 더 소리쳤다.
—(2025. 5. 필드 노트).
사실 P군에게 별 모양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별 모양을 원했기에 ‘별’이라고 말했겠지만, P군이 원했던 것은 정교한 별 모양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가 그 순간 즉각적으로 수용되는 경험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연구자는 자신의 설명이 타당하다고 믿었기에, 그리고 교육자로서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P군이 이를 수용할 수 있고, 또 수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P군의 고유한 감각적 세계를 연구자의 상식과 논리 안으로 억지로 끌어들이려 했던 잘못된 교육이었다.
P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 표현하고 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음에도, 연구자는 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다. 이러한 무심함과 성찰 없는 고민 끝에 이루어진 일방적인 교정과 강요(김미남, 2022)가 P군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타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행해진 나의 행동들이 실상은 그의 세계를 파괴하는 폭력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그를 향한 미안함과 함께 자신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사실 연구자가 느끼는 무력감의 실체는 과거 유아교사 시절의 무지에 대한 회한과 맞닿아 있다. 당시 교실에서 만났던 장애 혹은 경계선 지능 유아들을 떠올려 보면, 연구자는 그들을 단체 생활을 방해하는 존재로 치부하며 제지에만 급급했었다. 또한 자녀의 상태를 수용하지 못하는 부모의 태도를 탓하며 나의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특수 및 통합교육에 관한 여러 수업을 이수하며 이론적 기반을 갖춘 후에도 P군 한 명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의 무지보다 더 깊은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결국 연구자가 마주한 무력감이란 단순한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머리로 학습한 교육적 이상이 아이의 실제 삶에 가닿지 못할 때 발생하는 실존적 고뇌였다. 연구자는 이러한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교육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P군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준비를 하게 되었다.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서의 장애아동이 아닌, 함께 머물며 소통해야 할 인격체로서 P군을 마주하는 것은 바로 이 무력감의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2. 깨달음: 손상3)을 매개로 한 인격적 감응
연구자가 P군을 마주하며 겪은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그를 ‘자폐성 장애아’라는 진단명의 집합체가 아닌, 고유한 욕구와 능력을 갖춘 ‘한 아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초기 멘토링 과정에서 연구자의 시선은 늘 P군이 지닌 생물학적 손상의 취약성과 그로 인한 돌발적 행동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는 연구자로 하여금 P군을 늘 누군가의 세밀한 도움과 감시가 필요한 의존적 존재로 규정하게 했으며, 비장애인 기준에서 그의 부족함만을 바라보는 편향된 관찰을 낳았다. 그러나 P군과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그의 일상에서 마주한 순간들은 연구자가 가졌던 막연한 선입견에 작고 선명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센터 교실에 들어선 P군이 아랫도리를 만지며 동동 뛰기 시작했다. 활동지원사가 화장실에 가고 싶냐 물은 뒤 맞은편 건물의 화장실로 가자고 했다. 순간 나는 ‘P가 혼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 ‘지원사님은 어디까지 도와주시는 거지?’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들을 따라갔다. 남자화장실 문 앞에서 활동지원사는 태연하게 “P야, 하고 와”라고 말했다. P군은 자연스럽게 혼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2025. 5. 필드 노트).
위 상황에서 연구자는 실소를 지었다. 그 실소는 연구자가 P군을 어떤 존재로 규정해 왔는지에 대한 자문(自問)이자 그동안 그를 나와 동일한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했음을 깨닫게 하는 자답(自答)이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스스로 인지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조차 장애아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왜곡해온 것이다. 이후 연구자는 P군을 장애아가 아닌 한 어린 아이로 보게 된 결정적 순간을 맞이했는데, 그것은 둘이 함께 소리내어 웃었던 순간이다.
밖으로 나가려는 P군을 내가 막아섰다. 그러자 P군이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엄마, 아빠오시면 가자”라고 말했다. P군이 아기처럼 다리를 흔들길래 내가 “P야, 다리 아파?”라고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P군의 종아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딱히 거부하지 않았기에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주었더니, P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 찰나의 순간에 살짝 놀랐다. 이어 “P야? 재밌어?”라고 물으며, 발바닥 박수를 쳐주고, 다리를 번갈아 가며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P군은 큰 소리를 내며 활짝 웃었다. 그 생생한 웃음소리에 나는 너무 놀라 더 크게 웃고 말았다. ‘웃을 수도 있는 아이였구나.’ 그 뒤로 한 시간가량 다리 움직이는 놀이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2025. 5. 필드 노트).
아이와 함께 웃음을 공유한 순간, 관찰의 대상이었던 P군은 비로소 연구자의 삶으로 들어와 인격적으로 조우하는 존재가 되었다. 연구자는 P군이 즐거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이러한 인격적 감응은 연구자가 가진 장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무력감의 감정을 넘어 그와 연대할 수 있는 정서적 토대가 되었다. 한편, ‘웃을 수도 있는 아이였구나’ 라는 연구자의 독백은, 그동안 P군을 웃음이나 감정이 배제된 치료와 관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연구자의 무지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결국 P군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질서를 위협하거나 교정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하고 기쁨을 표현하는 한 아이였다. 그러나 존재를 긍정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곧 소통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고유한 방식을 이해하고 깊은 상호작용에 가닿기까지는 적지 않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고 서로의 경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김미남, 2022).
연구자는 비고츠키(Vygotsky)의 손상학(Defectology) 이론을 통해 P군의 집착적 행동을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발달적 원동력을 지닌 다름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손상은 단순히 생물학적 결함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비장애인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발달 경로를 창출해내는 창조적 힘을 발휘한다(정은, 2007, 2009). 그동안 자폐성 장애의 증상으로만 치부되었던 P군의 독특한 행동들은, 사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특정 지점에 집중시키는 역동적인 과보완의 과정이었다.
글자 읽기를 잘 마친 P군에게 칭찬의 의미로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어느 순간 내 손이 조금 높았는지, P군은 점프를 하며 손바닥을 맞췄다. P군이 즐거운 듯 웃길래 손을 더 높이 올렸더니 박장대소하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글자 읽기를 멈추고, 신체 놀이를 시작했다. 방향과 높이를 바꿔가며 한참 하이파이브를 즐기던 P군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때였다. P군이 나와 눈을 맞추었다. 눈맞춤은 1~2초로 짧았지만, 내게 놀라움, 기쁨, 신기함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을 느끼게 해준 강렬한 순간이었다. 자폐성 장애는 보통 눈 맞춤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고 P군 또한 그래 왔기에,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P군은 자신과 즐겁게 놀이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일까. 왜 나는 이 아이의 결핍을 무능으로만 받아들였을까. 여전히 내 안에는 깨야 할 선입견이 너무나 많았다.
—(2025. 6. 필드 노트 및 자기성찰 자료).
하이파이브를 통한 교감과 짧은 눈 맞춤은 장애가 소통의 단절이 아니라, 단지 비장애인의 상식과는 다른 경로의 신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연구자가 눈 맞춤이라는 표준화된 지표에 매몰되어 있을 때, P군은 이미 온몸을 던지는 유희를 통해 자신과 즐겁게 놀이하는 타자를 궁금해하고 탐색하는 주체로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연구자는 그동안 P군의 행동이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원해줄 줄 수 있는지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만 급급해 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장애를 손상이나 결함이 아닌 장애라는 이름의 고유한 다름으로 재정의하게 된 이 인식의 전환은, 과거의 한 기억을 회상하며 더욱 선명하게 구체화되었다.
사회성 발달이 지연되어 자폐적 성향을 보였던 조카는 서너 살 무렵,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반복해서 타는 것에 강하게 집착했다. 흔히 말하는 의학적 정보에 비추어 보면, 이는 전정감각을 충족시키려는 자폐성 장애의 전형적인 상동 행동이었다. 나 역시 그 행동을 그렇게만 이해했다. 그러나 조카의 조부모님은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아이가 원한다면 백 번이고 군말 없이 함께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를 타주셨다. 그분들에게 그것은 교정해야 할 문제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지금 가장 즐거워하는 놀이’일 뿐이었다.
—(2025. 12. 자기회상 자료).
이 기억은 연구자에게 통렬한 성찰을 안겨주었다. P군과의 색종이 놀이에서 ‘두꺼우면 자를 수 없다’는 비장애인의 물리적 논리를 강요하며 실랑이를 벌였던 연구자와 달리, 조카의 조부모님은 아이의 세계에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아이의 방식을 다름 그 자체로 수용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거나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사람과 달라 이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탐색하고 손상을 보완하며 만들어낸 과보완의 역동성은 그저 교정되어야 할 문제 행동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반복은 비효율적이고 이상한 것이지만, 조카의 세계에서 그것은 세상을 탐색하고 안정을 찾는 고유한 감각 양식이었다. 결국 장애는 비장애인의 논리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의 속도이자 질적으로 다른 발달의 경로이다. 연구자는 이 회상의 과정을 통해, 장애를 다름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차이를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고유한 리듬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용기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연구자가 P군을 마주하며 도달한 최종적인 깨달음은 장애가 발달의 종결이나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애는 생물학적 손상이라는 결과값에 머물러 있는 고착된 상태가 아니라, 그 결함을 사회적으로 보완하며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창출해가는 역동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장애아동의 발달이 비장애인과는 다른 경로를 취할 뿐, 그 안에는 고유한 역동성과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정은, 2009; Vygotsky, 1983/1993). 이러한 이론적 접근은 연구자가 P군이 가진 유능함을 목격하며 실재적인 희망의 불씨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P군이 현관에 붙은 교실 이름을 보고 어눌하게 읽었다. “OOO 교실”, 내가 “P야, 글자 읽을 줄 아네?”라고 묻고, 다른 글자도 읽어보자며 주변에 붙은 글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글자 읽기를 하였다. P군은 나의 안내에 따라 꽤 오랜 시간 글자를 읽었다. 이 순간 나는 P군과 교육적 상호작용을 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2025. 5. 필드 노트).
그동안 연구자는 P군을 학습이 어려운 존재로 여겼으며, 그와의 상호작용 또한 안전을 지키고 돌발 사고를 방지하는 수준의 신체적 보호와 관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글자 읽기라는 공유된 활동 안에서 비로소 교육적 상호작용이 성립되는 것을 경험하였고, 이는 연구자가 장애란 이유로 닫아두었던 P군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성장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연구자는 과거 동료 교사의 자녀와 조카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이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친한 동료 교사의 아들이 영아 시절, 자폐를 의심할만한 증상을 보였다. 전반적인 신체와 언어 발달이 더뎠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사소통의 시도가 거의 없었고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특히 상어와 고래에 과도하게 집착했고 미각과 촉각 또한 매우 예민했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예의주시하던 동료 교사는 이러한 증상을 민감하게 인지했고, 곧바로 언어 치료와 감각 통합 치료를 시작했다. 아이는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비록 외운 것을 말하는 듯 다소 어색한 면은 있었으나 사회적 상호작용이 눈에 띄게 늘었고, 감각에 대한 예민함도 상당 부분 완화되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감정 표현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집착, 미숙한 신체 조절 능력 등의 특징은 남아 있지만, 조기에 이루어진 적절한 중재 덕분에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2025. 2. 자기회상 자료).
조카가 돌이 지나면서부터 또래와 다른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언어 발달이 더뎠고, 눈 맞춤이 거의 없었으며, 사람보다는 소리와 빛이 나는 장난감에만 몰두했다. 동생은 아들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렸고, 아이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발달 검사를 받고 센터에 등록했다. 조카는 언어 및 감각 통합 치료를 받으며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제법 자연스러워졌고, 말문이 트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네 살 말 무렵 한글과 산수를 스스로 깨우친 점은 일반적인 발달 궤적과는 조금 달랐다. 이러한 특징이 또 다른 걱정을 낳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아이만의 특별한 강점이자 성장의 큰 동력이 되었다.
—(2025. 2. 자기회상 자료).
위 두 사례는 장애가 고정된 불행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한 상태임을 시사한다(Guralnick, 2011). 이들은 발달의 속도가 다를 뿐, 사회적 존재로서 필요한 양식을 학습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임을(조재성, 2023)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교사나 성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장애아를 자연스럽게 대하는 태도와 여유, 기다림(박성옥, 김성훈, 2017)일 것이다. 연구자가 P군에게서 발견한 배움의 잠재력과 성장의 가능성은 그를 비장애인의 틀이나 경로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경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길을 끈기 있게 함께 걸어주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은(2009)은 장애아동의 유능함을 우연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아동을 이미 장애인으로 전제하는 순간 관찰자의 통찰력과 상상력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연구자 역시 P군을 자폐성 장애라는 진단적 프레임에 가두어 바라보았기에 그가 매 순간 발휘하고 있었을 유능함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연구자는 장애라는 렌즈를 내려놓고, P군을 포함하여 연구자의 삶 반경 안에서 마주하게 될 모든 장애인의 실존을 더 치열하게 응시하고자 한다. 비록 P군과의 만남은 이 연구와 함께 일단락되었으나, 그가 남긴 깨달음은 특정 대상에 국한된 성찰을 넘어 연구자의 일상 전반에서 지켜나가야 할 윤리적 실천으로 남았다.
Ⅳ. 논의 및 제언
본 연구는 유아교육자이자 어머니인 제1연구자가 자폐성 장애를 지닌 P군을 멘토링하며 겪은 내면의 갈등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그 안에 내재된 에이블리즘과 아브젝시옹의 기제를 성찰적으로 탐색한 자문화기술지이다. 연구 결과, 연구자는 장애를 두려움과 교정의 대상으로 보던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아가 비고츠키의 손상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장애가 주류 사회의 표준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 개념이자 발달의 새로운 경로임을 깨닫게 되었다. P군과의 만남은 연구자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이었으나, 동시에 그 한계를 발판 삼아 인간 삶에 내재된 부딪힘과 다름을 수용하며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에서 도출된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면화된 에이블리즘(Ableism)의 직면과 성찰적 해체이다. 연구자가 멘토링 초기 경험한 가장 당혹스러운 감정은 P군이 오지 않은 날 느꼈던 안도감이었다. 이는 장애를 비장애인의 평온한 질서를 깨뜨리는 불안한 존재로 전제할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오랜 시간 연구자에게 내면화된 에이블리즘의 실체였다. Svendby et al.(2018)에 따르면, 에이블리즘은 비장애인의 신체를 온전한 인간의 표준으로 상정하고 장애 신체를 결함이나 치료의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의도치 않은 차별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연구자는 과거 장애인에 의해 겪은 트라우마를 근거로 장애를 예측 불가능한 위험으로 낙인찍고 회피해 왔다. 사실 폭력이나 추행은 비장애인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그것이 ‘장애’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연구자의 기억 속에 더 강렬한 부정적 낙인으로 고착되었다는 사실은, 내면에 비장애 중심적 규범이 얼마나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반증한다.
이러한 불편함의 심연에는 자신의 정상성과 안락함을 보호하기 위해 타자를 경계 밖으로 밀어내려는 아브젝시옹(Abjection)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주체가 자신의 순결함이나 질서유지를 위해, 그것을 위협하는 대상을 배제하려는 역동적인 거부 반응을 말한다(Schoolcraft & Anderson, 2023). 연구자가 P군의 돌발행동 앞에서 느꼈던 공포와 그가 부재할 때 느꼈던 해방감은, 결국 장애라는 통제 불가능한 역동성이 비장애인으로서 누려온 안정적인 일상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불안은 장애 신체(disabled body)가 환기시키는 인간의 본질적 취약성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게 함으로써, 타자와의 동등한 관계 맺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나아가 이러한 배제는 배려와 시혜로 위장되기도 했다. ‘도와줘야겠다’는 연구자의 선의는 역설적으로 장애인을 자율성 없는 무력한 존재로 프레임화하여, 비장애인의 우월하고 안정된 위치를 확인하려는 권력 행사로 기능했다. 따라서 연구자는 장애를 불안한 존재로 규정하거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버리고, 비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상황에서 주도권을 독점하려 했던 자신의 위치성을 근본적으로 해체해야 함을 자각하였다. 특히 멘토링 현장에서 끊임없이 에이블리즘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연구자의 경험은, 형식적인 교육이나 지원보다 비장애인이 지닌 권위와 내면화된 차별 기제에 대한 정직한 응시가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둘째, 장애의 재해석과 잠재력의 발견이다. 본 논의를 시작하며 연구 과정에서 우연히 보게 된 피터 게스퀴에르(Peter Ghesquière) 감독의 단편 영화 <Downside Up>(Ghesquière, 2016)을 떠올려 본다. 이는 다운증후군이 보편적 표준인 가상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 비장애인은 오히려 ‘장애인’으로 타자화되며, 그들의 신체적 특성과 능력은 치료되어야 할 결함으로 취급된다. 영화는 다양한 장치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정상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즉, 장애란 신체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가 설정한 표준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임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전복적인 시선은 비고츠키(Vygotsky)의 손상학(Defectology)을 통해 장애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연구자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비고츠키는 생물학적 결함인 일차적 손상 자체보다, 그 결함으로 인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소외되며 발생하는 이차적 손상(사회적 손상)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정은, 2007, 2009). 이 관점에서 볼 때, P군이 센터 내에서 소외되었던 상황은 자폐라는 증상의 결과라기보다, 그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편견과 환경이 만들어낸 이차적 손상의 현장이었다. 나아가 비고츠키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인간이 지닌 손상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손상의 크기보다 풍성한 ‘과(過)보완’의 상태를 지향한다고 보았다(정은, 2007). P군이 서랍 구석의 작은 불빛에 집착하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에너지가 한곳으로 집중되어 나타나는 보완의 과잉 상태이자,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독특하고 창조적인 발달적 경로이다. 즉, P군의 행동은 교정되어야 할 결함의 증거가 아니라, 결핍을 극복하고 환경과 소통하려는 잠재력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 아닌 사회의 억압 구조로 간주하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The Social Model)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적 모델은 장애가 신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성된 것으로 간주하며(Oliver, 2013), 개인의 기능 자체보다 사회적 지원 사이의 격차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말할 수 없는 것은 기능적 결함이지만, 적절한 보조 장치가 제공되지 않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장애’이다(Morris(Barnes, 2003, p. 14 ‘재인용’)). 연구자가 은행에서 목격한 소통의 단절 역시 장애인의 신체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보완대체의사소통과 같은 시스템이 부재한 공적 공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장애’였다.
결론적으로 장애를 사회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그 안에 내재된 다름을 응시할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은 시작된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결과적으로 노인, 어린이, 임산부 등 사회 구성원 모두의 편의를 증진하는 보편적 설계의 원리가 되는 것처럼, 장애인의 고유한 리듬을 수용하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 전체의 보편성을 확장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연구자는 P군과의 조우를 통해 장애를 삶의 한 형태이자 개성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곧 우리 모두의 안전과 존엄을 보장할 수 있는 터전임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포용의 실천을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갈 것이다.
셋째, 감응적 글쓰기를 통한 인격적 성장과 인식의 재구성이다. 연구자는 P군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실존적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자문화기술지라는 연구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 감응적 글쓰기의 과정(박수연, 임부연, 2022)과 맞닿아 있다. 감응적 글쓰기란 연구자가 자신의 삶을 직관하고 그 안에 내재된 모호한 감정들을 학문적 사유와 엮어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탐구 과정이다. 연구자는 글쓰기를 통해 내면에 존재하던 장애에 대한 트라우마와 에이블리즘의 실체를 정직하게 응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억눌려 있던 부정적 감정들을 해소하며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의 재구성을 경험하였다. 또한 연구자는 글쓰기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했다. ‘과연 우리는 장애라는 프레임 없이 타자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장애인의 행동을 과도하게 문제시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 또한, ‘장애’라는 꼬리표의 글자를 더 진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성찰은 연구자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해체하고 모든 존재의 고유성이 온전히 존중받는 포용적 사회로의 재구성을 독려한다.
특히 연구자는 이 과정에서 장애를 배제한 나의 삶은 없으며, 타인과 부딪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김호현, 2022) 인간 삶의 본질을 깊이 수용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수준을 지닌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대화의 불평형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 또한 각기 다른 발달 수준과 존재의 리듬이 충돌하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리듬을 가진 이를 차별하지 않고 품어주는 관용이며, 연구자는 P군과의 만남을 통해 부딪힘을 포용하는 어른의 품(김호현, 2022)을 갖춘 존재로 성장해야 함을 깨달았다. 연구자들(박수연, 임부연, 2022; Ellis et al., 2011)이 주장한 것처럼 자문화기술지는 연구자의 미시적인 삶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과 사회를 학문적으로 연결하며 세상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 주었다.
넷째, 현행 장애인식개선교육의 한계를 극복할 한 대안으로 자문화기술지적 성찰과 글쓰기를 제안한다. 현재 장애인식개선교육은 주로 장애의 정의,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 등을 전수하는 지식 전달 패러다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비장애인이 자신의 내면 깊이 박힌 에이블리즘이나 아브젝시옹과 같은 무의식적 기제들을 대면하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에 자문화기술지는 개인의 내면적 편향성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바라보게 함으로써 숨겨진 장애인식을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개인의 변화를 이끌어 내며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교육적 지원과 사회적 변혁의 원동력(서유진, 2020)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식 전달 중심의 형식적 장애인식개선교육에서 벗어나 장애인과의 실질적 관계 맺기와 장애인에 대한 내면적 갈등을 직면하게 하는 성찰 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자문화기술지는 그 전환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더불어 교사 교육에 있어서도 자신의 취약함과 편견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연수 마련을 제안한다. 정성은, 정대영(2019)이 지적했듯, 장애 학생의 인권 교육이나 통합교육 실행의 성패는 결국 교사의 인식과 태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같은 성찰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에이블리즘을 발견하고 이를 해체해 나가는 작업은, 교사들이 장애 학생을 한 명의 존엄한 주체로 마주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교육적 실천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에서 보여준 연구자의 자기 성찰적 기록과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장애인식개선교육은 고정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투영된 장애인에 대한 시선을 끊임없이 교정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연구자가 글쓰기를 통해 인식을 전환하고 치유를 경험했듯, 교육 현장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장벽을 직면하고 이를 글로 써 내려가며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성찰적 공유가 확산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장애를 결함이 아닌 삶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수용하는 진정한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비장애 일반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식을 성찰한 자문화기술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연구자의 내면적 치부를 정직하게 드러내며 학술적 진실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연구자의 고백과 성찰이 독자들의 내면에 자리한 장애인식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하기를 기대하며, 여기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는다. 후속 연구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학생, 교사, 학부모, 일반 시민 등)의 협력적 자문화기술지를 통해 비장애 중심 사회의 장벽을 보다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탐색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제안한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2025년 한국생활과학회 하계학술대회 구두 발표 논문을 보완하여 작성되었음.
REFERENCES
- 강윤아, 신현기(2019). 초등학교 교사의 통합학급 운영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통합교육연구, 14(1), 1-28.
- 강은희(2023a). 자폐성장애 아동의 사회적 기능 향상 개입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강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강은희(2023b). 장애인복지에서 자문화기술지의 역할과 가치. 글로벌사회복지연구, 13(1), 43-58.
- 강은희(2023c). 자폐성장애 아동의 바른 이해 과정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융합인문학, 11(2), 31-58.
- 김두희(2020). 교양교과목 [미디어를 통한 장애인의 이해]의 토의식수업이 대학생들의 장애인식에 미치는 영향. 교양교육연구, 14(3), 111-126.
- 김미남(2022). 시각장애학교 사진수업 참여경험에 관한 자문화기술지: “볼” 줄만 아는 이가 “볼” 줄만 모르는 이에게 사진 배우기. 미술과 교육, 23(1), 97-134.
- 김영천, 이동성(2011). 자문화기술지의 이론적 관점과 방법론적 특성에 대한 고찰. 열린교육연구, 19(4), 1-27.
- 김호현(2022). 발달하는 삶에 관한 자문화기술지: Piaget가 알려준 세상을 보는 방식. 열린유아교육연구, 27(5), 83-107.
- 류동춘, 정원섭, 이승희, 김영훈, 김영심(2014). 인문사회분야 연구윤리 매뉴얼. 서울: 한국인문학총연합회, 한국연구재단.
- 박부경(2017). 비시각장애 교사의 시각장애 학생 피아노 교수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음악교수법연구, 18(2), 51-82.
- 박성옥, 김성훈(2017). 한 초등학교 교사의 불편한 진실 - 읽기장애 학생 지도에 관한 자문화기술지-. 교육문화연구, 23(6), 471-494.
- 박수연, 임부연(2022). 자문화기술지 글쓰기의 방법론적 제안: 유아교육 현장의 대안적 글쓰기로서 「감응적 글쓰기」 생성으로 나아가며. 교육혁신연구, 32(2), 199-229.
- 박순용, 장희원, 조민아(2010). 자문화기술지: 방법론적 특징을 통해 본 교육인류학적 가치의 탐색. 교육인류학연구, 13(2), 55-79.
- 서미경, 이민화(2024). 신문기사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보건사회연구, 44(3), 295-314.
- 서유진(2020). 특수교육 분야에서의 자문화기술지 연구 동향 분석 및 향후과제. 특수아동교육연구, 22(4), 135-164.
- 안소영, 김명찬(2024). “나의 어머니는 조현병입니다.”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를 둔 자녀 경험에 관한 협력적 자문화기술지. 가족과 가족치료, 32(2), 239-270.
- 유민지, 박주연(2023). 비장애 형제자매로서의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질적탐구, 9(3), 123-143.
- 이대식, 김수연(2013). 장애인식개선 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 교육논총, 33(1), 113-136.
- 이도희(2019). 지체장애인 배우자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연구. 한국융합학회논문지, 10(5), 257-266.
- 이동성(2012). 질적 연구와 자문화기술지. 서울: 아카데미프레스.
- 이민경, 김성희, 오욱찬, 오미애, ... 이선우(2024).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 세종: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이신영, 서석진, 한동일(2019). 대학생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연구.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58(1), 27-47.
- 이원무(2022). 장애인식개선교육이라 쓰고 차별로 읽는다,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350, 에서 인출.
- 이원희, 곽승철(2014). 발달장애학생 부모의 통합교육 인식과 관점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특수교육학연구, 49(3), 89-119.
- 이재호, 박대호(2023). 손상과 보완 -비고츠키 이론에 기반한 도덕과 수업의 방법적 원리 탐색-. 교원교육, 39(5), 119-134.
- 이종남, 한상미(2018). 장애 인식개선 프로그램의 효과성 연구. 재활복지, 22(2), 103-126.
- 이혜선, 조혜진, 조재희(2024). 장애를 향한 미디어 재현의 배양 효과: 낙인·반낙인 단서가 사회 속의 장애인 인식과 장애인을 향한 신념에 미치는 영향. 한국언론학보, 68(6), 320-361.
- 임연수, 김희연(2010). 역통합교실 내 시각장애유아와 일반유아의 또래관계 형성에 관한 문화기술지. 특수교육학연구, 45(3), 1-42.
-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법률 제21065호. (2025).
- 정성은, 정대영(2019). 장애학생 인권교육 실행의 어려움 및 지원방안 연구.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58(1), 101-127.
- 정은(2007). 비고츠키의 ‘손상학(Defektologie)’ 연구가 장애아동교육에 주는 시사점 탐색. 특수교육연구, 14(1), 59-76.
- 정은(2009). 지적 장애아동 발달에 대한 손상학(L. Vygotsky)적 접근.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10(3), 35-53.
- 조재성(2023). 초등학교 교사의 자폐성장애 아동 지도 경험에 관한 자문화기술지. 질적탐구, 9(3), 1-25.
- 진현경, 홍재영(2023). 지적장애 자매가 있는 초임 특수교사의 교육신념의 변화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23(3), 691-713.
- 최수미, 김성길(2021). 발달장애 자녀 어머니의 모성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Andragogy Today: Interdisciplinary Journal of Adult & Continuing Education (IJACE), 24(4), 67-91.
-
Babik, I., & Gardner, E. S. (2021). Factors affecting the perception of disability: A developmental perspective. Frontiers in Psychology, 12, 702166.
[https://doi.org/10.3389/fpsyg.2021.702166]
- Chang, H. (2013). Individual and collaborative autoethnography as method: A social scientist's perspective. In S. H. Jones, T. E. Adams, & C, Ellis (Eds.), Handbook of autoethnography (pp. 107-122). Walnut Creek: Left Coast Press.
-
Duncan, M. (2004). Autoethnography: Critical appreciation of an emerging art. International Journal of Qualitative Methods, 3(4), 28-39.
[https://doi.org/10.1177/160940690400300403]
-
Ellis, C. (2007). Telling secrets, revealing lives: Relational ethics in research with intimate others. Qualitative Inquiry, 13(1), 3-29.
[https://doi.org/10.1177/1077800406294947]
- Ellis, C., Adams, T. E., & Bochner, A. P. (2011). Autoethnography: An overview. Historical Social Research/Historische Sozialforschung, 36(4), 273-290.
- Ellis, C. & Bochner, A. P. (2000). Autoethnography, personal narrative, reflexivity: Researcher as subject. In N. K. Denzin, & Y. S. Lincoln (Eds.), The handbook of qualitative research (pp. 733-768). Thousand Oaks: SAGE Publication.
- Ghesquière, P. (Director). (2016). Downside Up [Film]. A Team Productions.
-
Guralnick, M. J. (2011). Why early intervention works: A systems perspective. Infants & Young Children, 24(1), 6-28.
[https://doi.org/10.1097/IYC.0b013e3182002cfe]
-
Morris, J. (1993). Independent lives?: Community care and disabled people. Basingstoke: Macmillan.
[https://doi.org/10.1007/978-1-349-23136-2]
-
Munyi, C. W. (2012). Past and present perceptions towards disability: A historical perspective. Disability Studies Quarterly, 32(2).
[https://doi.org/10.18061/dsq.v32i2.3197]
-
Oliver, M. (2013). The social model of disability: Thirty years on. Disability & Society, 28(7), 1024-1026.
[https://doi.org/10.1080/09687599.2013.818773]
- Saldaña, J. (2009). The coding manual for qualitative researchers. Los Angeles: SAGE Publications.
- Schoolcraft, E. M., & Anderson, M. R. (2023). Body out of sight, out of mind: Abjection and American disability policy. The Macksey Journal, 3, 110.
-
Svendby, R., Romsland, G. I., & Moen, K. (2018). Non-disabled ableism: An autoethnography of cultural encounters between a non-disabled researcher and disabled people in the field. Scandinavian Journal of Disability Research, 20(1), 219-227.
[https://doi.org/10.16993/sjdr.6]
- Vygotsky, L. S. (1983). The collected works of L. S. Vygotsky: Vol. 2. The fundamentals of defectology. R. W. Rieber & A. S. Carton, Eds. (1993). New York: Plenum Press.
![[그림 1] [그림 1]](/xml/50563/KJHE_2026_v35n4_589_f001.jpg)